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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

[자경수현] 환상통

곰냐미 2018. 12. 30. 20:45

공자경x양수현





수현은 지독한 불면증을 앓았다.

불면증은 그를 더 괴팍하게 만들었고 삼일 이상 잠들지 못하면 약간은 취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며칠 꼬박 밤을 새어 작업을 하고 기절하여 잠들었다가 깨었다.


쏴아아-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오는 귀에 빗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비오는 날이 지독하게 싫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오른쪽 어깨가 저렸고 가끔 사고 당시의 소음이 빗소리 사이로 들려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귓가에 바람이 세게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뜬 시야에 사람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였다.


"괜찮아요."


다정한 목소리와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수면 위로 올라오던 수현의 의식이 깊게 잠겼다.


-


공자경은 옷에 맺힌 빗물을 털어내며 자신이 묵을 여관방 침대에 뜬금없이 나타난 특이한 복식의 사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악몽을 꾸는 듯 얼굴이 일그러졌고 앓는 소리가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자경은 손을 뻗어 식은땀을 흘리는 이마를 닦아주었다.


"괜찮아요."


사내의 눈꺼풀이 떨리며 흐릿하게 모습을 들어내는 것 같더니 다시 눈이 닫혔다.

사내의 숨소리가 느리게 늘어졌고 땀을 닦을 천이라도 얻어오려고 자리를 잠시 비우고 돌아와보니 침대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공자경은 잠시 신기루를 본 것은 아닌가 제 뺨을 꼬집어 보았다.


-


수현은 침대에서 기지개를 펴고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개운한 몸이었다.


팔을 뻗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다행히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고 시계는 14시를 나타내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 침대곁에 서 있었다.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침대에 걸터 앉아 그가 서 있었던 곳을 물끄럼히 바라보았다.


꿈에서만 나타나는 뮤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럼이 많은가 보네."


반박은 알아서 하라지만 자신의 꿈에서만 본 사람이니 반박따위 할 필은 없었다.

수현은 까치집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서 벗어났다.

배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보았지만 생수와 맥주 두어개 정도만 있을 뿐 배를 채울만한게 없었다.

냉장고를 닫고 창가로 걸어가 암막커튼을 걷어 밖을 살펴보았다. 밖에는 부슬비가 오고 있었고 수현은 비가 싫었다.

닫았던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내었다.


치익-


맥주를 한 모금 삼키자 건강검진에서 의사가 밥을 잘 챙겨먹으라고 했던게 머리를 스쳐지나갔지만 수현은 비가 싫었다.

꿈에서 잠시 보았던 사람의 손길이 떠올랐다.


캉!


갈증을 해소하듯 맥주를 넘기고 빈 캔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쓰읍- 젠장."


맥주캔을 던진 오른쪽 어깨가 저려왔기에 왼손을 올려 어깨를 주물렀다.

빈 침대를 보다가 쓸쓸함을 달래줄 대상을 찾기 위해 대충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수현이 현관을 열자 구름이 사라진 하늘에서 내려오는 강렬한 햇빛에 눈을 찌푸렸다.


"날씨 한 번 기가 막히네."


수현은 제법 잘 생겼고 거기에 말을 재치있게 잘 했다.

친구들도 그의 말솜씨를 인정했고 그 말솜씨는 수현이 지독한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상대를 찾는데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인생이 쓴맛이 있으면, 단 맛도 있어야 살지."


쾌락은 한 순간이었지만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쉬운 방법이었기에 수현은 비가 그치면 집에서 탈출하듯이 원나잇 대상을 찾아 나섰다.


-


톡.


정수리에 물방울이 떨어진 느낌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과 별이 사라진 까만 도시의 하늘에서 수현을 비웃듯 물방울들이 쏟아졌다.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았다.


수현은 욕을 내뱉으며 비를 피할 곳을 찾았지만 어정쩡한 새벽시간을 알리듯 가게들의 문이 다 닫혀 있었다.

비에 젖은 몸은 무거웠고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수현은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저리는 어깨를 붙잡고 어찌할바를 모른채 벽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모두 뱉으며 통증이 가라 앉기를 기다렸다.


"또 보내요."


자신을 아는 척 하는 목소리에 아까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놈인가 싶어 옆을 돌아보았다.

수현은 자신에게 우산을 씌어주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옛날 미인도에서 나오던 미인같이 생긴 사내가 자신을 아는 척 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집에 가자."


수현의 말에 오히려 남자가 놀라며 수현을 바라보았다.

수현은 치렁치렁한 옛날 옷을 입은 또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딴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청유가 아닌 명령에 가까운 말과 함께 동아줄을 붙잡는 것처럼 손을 뻗어 남자를 붙잡았다.

수현은 딱딱한 벽 대신 남자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남자에게 매달리듯 두 손으로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남자는 다정하게 수현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굽은 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초대는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보다는 괜찮습니까?"


남자의 손길에 어깨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 위로 종이에 빗방울이 튀는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몸이 기울어지는 것 같더니 두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불편하겠지만 이게 더 빠를 것 같군요."


수현은 남자의 한 팔에 안겨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수현은 자신의 집에 하룻밤 상대를 들인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오히려 자신이 가자고 먼저 말하기까지 했다.

내뱉은 말을 물릴수 없었고 처음보는 자신을 도와준 해맑아보이는 또라이를 그대로 두면 이 험한 세상에 속옷까지 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양수현이 측은지심을 갖다니...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안다면 내일 죽는거 아니냐며 놀릴게 뻔했지만 지금은 그랬다.


철컥


수현은 무거운 현관문을 열고 사람 한 명 살린다는 생각을 하며 남자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아까가지만 해도 그렇게 말이 잘 나왔는데 남자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수현은 욕실에서 수건을 꺼내 몸을 닦으며 현관에 멀뚱하게 서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수건을 건내주기 위해 현관으로 돌아갔다.


남자가 서 있었던 자리에는 우산이 만든 작은 웅덩이만 남아있었다.


수현은 이 상황이 자신이 약에 취해서 보는 환각이거나, 꿈 속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젠 뇌까지 맛탱이가 갔나보네."


수현은 허탈하게 웃으며 현관을 열어 남자를 찾았지만 남자의 흔적은 어느곳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비가 그치고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


자경은 시야가 일그러지며 다시 익숙한 풍경으로 주변이 바뀌었다.


자경은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이었고 비가 온다고 생각이 들어 우산을 폈을 뿐이었다.

다시 보인 시야에는 주변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고 익숙한 사람이 벽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자경은 이끌리듯이 그에게 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비에 젖은채 어깨를 감싸고 있는 그는 굉장히 고통스러워보였다.


다시 돌아온 자경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젖어있는 우산이 자신이 겪은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자경은 자신의 팔을 붙잡던 하얗게 질린 손가락들을 잊지 못했다.

파랗게 질린 입술이 가련할 정도였고 자신의 어깨에 기대는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괜찮을지..."


자경은 혼자 남은 그가 걱정되었지만 그에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


빗 속에서 떤 수현은 당연하게 감기에 걸렸다.

머리는 열이 올라 시야가 흔들렸고 숨을 뱉는 입술은 뜨거운 온기로 입술이 바싹 말랐다.


침대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비상약을 넣어둔 서랍을 뒤졌다.

비상약이 있는 곳에는 언제 다 먹었는지 빈 상자만 있었기에 채워넣지 않은 과거의 자신에게 욕하며 빈 상자를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삼키며 열을 삭혔고 비틀거리며 침대에 몸을 눕혔다.

수현은 어쩌면 이러다가 고독사하는건 아닌지 약간 걱정이 되어 핸드폰으로 손을 뻗어 화면을 켰다.

인상을 찌푸리며 주소록을 살폈다.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주소록에 있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았기에 주소록 끝까지 도달한 스크롤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고 수현은 핸드폰 화면을 끄고 핸드폰을 밀어놓았다. 

이마에는 차가운 물병을 대고 한기가 가득한 몸을 웅크리며 이불을 끌어올렸다.


-


공자경은 자신의 세계에 나타난 그의 모습에 놀랍기 보다는 반가웠다.

비를 맞고 고뿔에 걸린 모양인지 열이 올라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머리에서는 땀이 축축했다.

공벌레마냥 웅크린 그의 몸에 화로를 가깝게 당겨주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기를 운용해 손을 차갑게 만들어 이마를 짚었다. 

차가운 손에 열을 식히려는 듯 자경의 손바닥을 파고드는 그의 행동에 자경은 작게 웃었다.

약을 구해올까 싶었지만 그의 곁을 비우면 그가 사라질 것 같아 그의 옆을 떠날 수 없었다.


한껏 웅크린 그의 등을 손으로 쓸며 자신의 기를 조심히 불어넣어주었다.

열을 내뿜는 마른 등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소매로 땀을 닦아주고 무리가지 않도록 기를 불어넣는 것을 반복한 것이 한 시진(2시간)정도가 지났을까.

남자의 표정이 풀어졌고 웅크렸던 몸을 풀어 뒤척였다.


눈꺼풀이 찡그려지더니 그의 눈동자가 들어났다.

잠이 덜 깬듯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더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손을 뻗어 자경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하자 자경이 그의 뒷목으로 팔을 넣어 그의 몸을 자신에게 기대게하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도와주었다.


손을 뻗어 이마를 짚었다.

다행히 아까보다는 열이 내렸다.

공자경을 바라보는 그의 눈매가 붉게 젖어있었다.

단순하게 열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자경이 보기에는 그가 울고있는 것 같았다.


"곁에 있을테니 걱정 말아요."


자경은 자신의 소매를 꽉 잡고있는 그의 마른 손을 보았다.

자경은 그를 제 품으로 다시 끌어 안았고 그는 자경의 목에 팔을 걸치며 자경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자경은 자신의 머리장식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이 옅어지는 것과 자신의 팔에 느껴지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를 제 품에 더 끌어 안았다.


-


수현은 자신의 침대에서 혼자 눈을 떴다.

그렇게 다정하던 손길이 꿈이라는 것은 쓸쓸함을 넘어 비참하기까지 했다.

쉽게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던 수현의 손바닥에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제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손바닥 안을 바라보자 처음보는 장신구가 제 손에 놓여있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사되어 유난히 반짝이는 금속 장신구는 자신을 간호해주던 남자가 꿈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


자경수현 하세요. 여러분.


朱興東 Don Chu - 噴嚏 Sneeze (官方版MV) - 電視劇《錦繡未央》片尾曲

https://youtu.be/6SNduvOOW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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