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세계(2013)의 가공물입니다.
동성애와 브로맨스에 거부감을 갖고 계신분들은 창을 꺼주세요.
“브라더”
하얗게 껍질이 일어난 입술을 살짝 누르며 쓸어내리는 손끝이.
걱정을 가득 담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가.”
입술을 스치고 차게 식은 뺨을 감싸는 따뜻한 손바닥이.
눈이 마주치자 개구지게 웃는 얼굴이.
“자성아.”
마른 귓불을 주무르고 뒷목을 힘주어 끌어당기던 큰 손이.
익살스럽게 윙크를 날리던 눈이.
“우리 복덩이.”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닿은 거리에서 귀를 간질이던 다정한 목소리가.
귓바퀴에 닿던 뜨거운 입술이.
모든 감각과 기억이 선명했다.
자성은 밀려오는 토기에 어지러움도 잊고 기분 좋은 기억에서 뛰쳐나와 바닥에서 튕겨지듯 일어나 화장실로 달렸다.
“욱-우엑!!! 웩!!!”
변기통에 머리를 박고 입을 벌리자 빈 속에 토해져 나오는 것은 미끌거리는 위액뿐이었다. 한 참 동안 속을 게워내자 그나마 있던 힘도 써버린 몸이 변기에서 미끄러지듯 차가운 타일 바닥으로 쓰러졌다.
“...........죽어... 버릴까.”
멍하니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차가운 타일과 어둠을 보며 느리게 눈을 감은 자성이 작게 중얼 거렸다. 입술 사이에서 흐르는 말과 다르게 내일 아침 눈을 뜨고 또 하루를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정청과 얼굴을 마주 한다면, 이 이야기의 끝은 결코 행복한 결말이 아님을 알기에 이야기의 끝을 볼 수 있는 용기 같은 것은 없었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에 잡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좋은 기억을 더듬어 꺼내려 했지만 머리속에서는 눈을 감기 전에 보았던 어둠과 같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성은 시린 추위를 느끼며 덜덜 떨리는 몸을 작게 웅크렸다. 그리고 몸이 깊은 물에 잠기는 것과 같이 바닥이 없는 어둠 속으로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정청은 담배를 길게 빨고 연기를 뱉어내었다.
“아따, 좆빠지게 바쁜가 보네요잉.”
연기사이로 지저분한 회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강과장이 전보다 더 더수룩한 모습이 되어 나타났다.
“너 같은 깡패새끼가 얼마나 많데 임마. 그 새끼들 처넣느라 죽겠다.”
“나도 쪼까 바뻤는디.. 씨발. 내가 대스타가 된 줄 알았단께요.”
정청의 손짓에 수하의 손에 이끌려 카메라를 든 남자 하나가 끌려 나왔다.
“씨발. 많이 본 낯짝이지요잉. 나가 저번처럼 당하지는 않을 건디. 느므 똑같이 하시믄 다 알아차려 불죠.”
“....무슨 일이냐.”
흐릿한 눈매에서 쏘아나오는 날카로운 시선이 정청에게 꽂혔다. 저 능글맞은 남자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번에 그 야기 아직 유효혀요?”
“무슨 이야기?”
“그짝이 도와준다는 야기 말여요. 아따, 늙으신께 치매끼가 보이네요잉.”
“무슨 속셈이냐. 전에는 네 식구들 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 한다고 하지 않았냐?”
“어떤 미친개새끼가 그짝잎 준 약 처먹고 회장 자리 꿰찼은께 드리는 말이어요. 싫으시믄 나 알아서 할텐께 걱정 마시구요잉. 보아 헌께. 그짝도 그 미친놈 어떻게 손도 못 대고 있는 것 같든디.”
정청은 손에 걸려 있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구둣발로 짓이겼다.
“생각 있으시믄, 연락 주셔요잉. 내가 그짝이 꽂은 빨대들 공구리치기 전에 말이여요잉.”
자리에서 일어나 두 걸음 정도 옮기다가 걸음을 멈추고 강과장을 돌아보았다.
“빨리 대답허시는 게 좋으실 거여요. 대가리에 핏물 안 마른 새끼들 짹짹거리지도 못허고 목 따이믄 겁나 짠허잖아요잉.”
부하들을 이끌고 걸음을 옮기는 정청은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다.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오는 구름 하나 지나지 않는 맑은 겨울날이었다.
“재헌아.”
“예. 형님.”
“늙은이들 잘 구슬려라잉. 잘 혀주는 것에 안 넘어올 새끼는 읍은께.”
“예.”
“너무 퍼준다고 아니꼽게 보지 말고. 다 쓸모 있는 짓인께잉. 그라고, 나 나가는 거 새나가지 않게 조심혀라잉.”
“예.”
“중구새끼 잘 감시허고.”
“예.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래. 싸게 댕겨 올란께. 네가 고생 좀 혀라.”
정청은 지하주차장에서 재헌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올라탔다. 허리를 굽힌 재헌을 뒤로하고 차는 느리게 지하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중구에게서 아직 까지는 딱히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없었다.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또 한 차례 칼춤을 추기 전의 고요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공항에 도착한 정청은 빠르게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타 멀어지는 창문 밖 세상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2시간의 짧은 비행이지만 자신이 믿는 사람과 있는 공간이기에 바짝 긴장했던 몸을 풀어 주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아무것도 끝내지 못하고 지칠 수는 없었다.
자성은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느끼며 눈을 떴다. 손을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온 몸에 감각이 없었다.
바닥을 딛고 일어나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어 얼굴을 씻어내었다.
얼굴에서 떨어지는 물을 대출 훑어 내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확인하니 11시 37분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자성은 휴대폰을 손에 쥐고 방으로 걸음을 옮기며 젖은 옷을 벗어 던졌다. 방에서 옷을 깨끗하게 갈아입고 집에서 나서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예.”
[미스리씨 핸드폰이죠?]
"예."
[세탁소입니다. 지나가다 보니까. 오늘 출근 안 하셨던데. 무슨일 있나봐요. 아! 그리고 저번에 맡기신 실크셔츠에 얼룩이 안 지워지더라구요. 좀 골치 아플 것 같은데 오늘 방문해 주세요.]
다루기 힘든 실크셔츠라는 건 요주 인물이 중국으로 들어왔다는 뜻. 지워지지 않은 얼룩이라는 것은 자신의 과거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뜻 했다. 통화를 종료한 자성은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묶어 놓은 듯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움직여 세탁소로 향했다.
어... 이직 준비 중입니다.
아하하하하하...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