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손바닥에 느껴졌던 남자의 감촉이 선명했다. 찰나에 마주한 마른 얼굴에는 약간 나이가 든 느낌이 들었지만 까만 눈에 분명히 자신의 얼굴을 담고 당황해 했다.
“형님?”
정청은 다시 들려오는 서원의 목소리에 생각을 접고 눈을 들어 단단한 조약돌 같은 서원을 바라보았다.
“응? 씨발 미안허다. 느 어디까지 혔냐. 싸게 끝내불자잉.”
“형님. 힘드시면 내일로 약속을 미루겠습니다.”
“아니다. 우리 코가 석자인디. 싸게 해지워야제잉.”
정청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자 서원도 더 이상 쉬라고 권유하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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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저 출장소 폐쇄합니다. 찾지 마십시오.”
자성은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폴더폰을 두 손으로 비틀어 던져 버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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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향에서 배웅을 받던 정청은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형님?”
“씨발. 아니다. 담에 보자잉. 그때까정 밥 잘 챙겨먹고.”
“예.”
정청은 서원의 눈동자와 눈을 마주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여 주었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조직원들에게도 자성의 죽음은 다들 힘들었을 시간일터였다.
“조심히 가십시오. 형님.”
“잉. 그려. 씨발. 좆질도 못할 맹키로 바쁘것지만 고생혀라.”
포기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찾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둘을 놓고 냉정하게 따지자면 굳이 찾아서 조직을 흔들 필요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지만 독기 오른 자신이겠지만.
이미 묻어버린 핏덩이였다.
모든 일을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자성을 찾는 다는 일에 감히 손을 대지 못할 것 같았다. 정말 자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면 자신이 마음먹은 모든 것이 다 무너지게 된다. 차가운 생각이 결론에 도달하자 정청은 눈을 감고 기억을 묻어버리기로 했다.
“씨발.”
자신과 함께 싸우다가 죽은 자성의 죽음은 이미 전설이 되어 떠돌았고, 복수라는 훌륭한 목표는 북대문파를 하나로 단단하게 뭉치게 했다. 그것은 비단 수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정청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정청은 두터운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비행기 시트에 등을 기대었다. 좁은 창밖으로 도시가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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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은 그 이후로 한 숨도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몽롱한 정신으로 좁은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날카롭게 선 신경은 제대로 방음이 되지 않은 벽과 문 너머의 소리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머리는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시야는 거리감이 제멋대로여서 좁은 방에 있는 가구에 발이 걸려 약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렸다.
불안한 걸음걸이로 결국 바닥에 엎어진 자성은 문을 열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손과 발로 기어 침대 옆으로 몸을 옮겼다. 두 눈은 모래를 넣어 비빈 것처럼 거칠었고 입 안은 바짝 말라 혀의 돌기가 느껴질 정도로 마른 것 같았다. 내려오는 눈꺼풀을 다물어 눈을 깜박였다고 생각했다.
“이 씨발! 부모 목 따먹는 호로새끼야!!!”
등 뒤로 정청의 날카로운 욕설이 귀를 찢었고,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시야에는 흙이 묻은 삽이 그대로 자성의 얼굴로 향했다.
퍽!
자성은 정청이 휘두른 삽에 머리를 맞고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크윽!”
바닥에 쓰러진 자성이 바닥을 손으로 짚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등을 무자비하게 누르는 구둣발에 곤충표본처럼 바닥에 다시 꽂혀야 했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썅놈의 새끼야. 그 동안 내 옆에서 을매다 재미봐붓냐잉. 개 잡새끼야.팔년동안 을매나 비웃었을지 생각허믄 창자가 꼬여서 디져버릴 것 같어야. 씨발놈아!”
캉!
머리에 또 한 번 충격이 느껴졌고 자성은 무어라 변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정청의 삽이 더 빨랐다. 정청의 몽둥이질에 몸이 흔들리며 두개골이 부수어지고 목이 잘려 머리통이 반 바퀴 굴러 등을 밟고 선 정청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씨발놈. 정작 팔년이여야 씨발. 씨이발!!!”
정청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성의 몸을 난도질하며 얼굴에 침을 뱉고 욕을 하고 있었다. 자성은 이성을 잃은 정청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려 했지만 눈꺼풀마저도 말을 듣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고 빌려고 해도 몸뚱이는 정청의 발밑에서 으깨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몸뚱이를 찌르던 삽을 내동댕이친 정청이 걸음을 옮겨 자성의 머리로 가까이 다가갔다. 자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바라보는 것 뿐 이었기에 청의 피 묻은 구두가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뚜벅 뚜벅.
머리가 허공에 들리는 기분이 들더니 청의 두 눈동자가 가까이서 시선을 마주했다. 청의 갈색눈동자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붉은 뺨을 적시고 있었다.
“왜 그렸냐... 왜!!!”
자성을 다그치는 청의 목소리가 사위에 울려 퍼졌지만 자성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고!!!! 아가리가 찢어져있으면 뭐라고 씨부려봐야 개씨발놈아!”
자성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 귀중한 보물처럼 정청은 도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걸까.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 사실을 부정하기를 원하는 걸까?
“이 씨발놈아...”
얼굴 위로 쏟아지는 원망섞인 목소리와 눈물이 자성의 심장을 무겁게 짓눌러왔다. 얼굴을 감싼 정청의 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간 끝도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주변의 풍경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자성은 고요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자성은 자신의 시야가 90도 회전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직도 꿈 속 인건가 싶어서 다시 눈을 감았다. 한 한동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자성은 아직도 꿈인가 싶어 손을 움직여 보았다. 시야에 나타난 손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정확하게 움직여 눈꺼풀 위에 무겁게 얹어졌다.
"........씨이발..."
꿈 속의 정청은 왜 울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
"흐흐흐-"
꿈을 더듬은 자성은 정청의 눈썹에 있는 점까지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것을 깨닫자 실소가 흘러나왔다.
더 이상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손으로 바닥을 짚어 침대에 기대었다. 너무나 짧은 잠을 잔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지는 것을 느끼며 밀려나오는 울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웃으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