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 굴러다니던 삽을 손에 쥔 채 걸음을 옮기는 정청이 자성을 지나쳐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석무의 뺨을 약간 세게 쳤다. 예고도 없이 뺨을 맞은 석무는 중심을 잃고 비틀 거렸고, 그 순간, 정청이 손에 들고 있던 삽으로 석무의 뒷통수를 무자비하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두개골이 깨지는 둔한 소리가 자성의 귀를 울렸고, 뻣뻣하게 굳은 목으로 무자비한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청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형체를 찾기 어려운 석무의 머리를 계속 내려치고 있었다. 정청의 몸에 피와 살점이 튀었지만 개의치 않은 듯 회색의 뇌가 튀어 나올 때 까지 정청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자성은 석무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을 느끼며 어떤 표정도 얼굴에 표현해 낼 수가 없었다.
정청의 커다란 손길에 핏물을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는 남자가 바로 저 자신이었다.
석무의 몸이 바르르 떨자 정청은 삽을 던져버리고 거지들의 칼을 뽑아 석무의 몸 위에 올라타 석무의 머리채를 잡아 머리통을 들어 올리고 목을 그었다. 석무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피가 자성의 얼굴에도 튀었다.
자성은 숨을 쉬는 것마저도 잊어버린 채, 어린아이의 손톱에 깔려 목이 떨어져버린 개미 같은 석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자성은 자신이 죽어버린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씨발!”
석무의 숨통을 끊어버린 정청은 쉽게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석무의 몸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일어나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아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석무를 바라보는 자성의 시선을 가로 막고 마주 섰다.
“워메, 우리 브라더가 충격이 컸나 보네, 느 얼굴이 진짜 좆같아 졌어야.”
시야가 가로 막힌 자성이 풀린 눈으로 정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갈색의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하자 온 몸의 피가 싹 빠져나간 것 같았다.
피비린내 가득한 정청의 손이 얼굴로 다가오자 자성은 그 두터운 손이 자신의 목을 낚아챌 것만 같아 반사적으로 뒷걸음쳤다.
“웜마? 씨부럴놈 가만히 있어 봐야.”
허공을 맴돈 정청의 손이 다시 자성의 얼굴로 다가와 깨끗한 소매 끝으로 자성의 뺨에 묻은 피를 닦아 내었다.
“쪼매 낫구만. 씨발. 비도 지랄같이 오고, 술이나 부으러 가자.”
어깨를 다독이는 정청의 손길이 평소와 같이 자상해서 자성은 이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답은 자신의 손에 쥐여져 있는 서류에 있었다. 자성이 눈동자를 떨어뜨리고 굳어버린 손을 움직여 서류를 들춰 보았다.
멋쩍은 강과장과 함께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신우의 모습이 보였다.
푸른 제복을 보니. 아마, 그녀가 경찰학교 졸업식 때 찍은 사진 인 것 같았다.
평소라면, 강과장이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에 감탄했을 지도 몰랐지만 지금 자성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자성은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 서류뭉치에 자신의 파일이 보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손이 다급하게 서류를 넘겼다.
[그는 처리하지 않으실 겁니까?]
양변호사는 열린 문에 서서 빗물에 손을 씻어내고 있는 정청의 곁으로 다가가 다시 물었다. 정청은 대답하지 않은채 비릿함이 있는 입 안으로 빗물을 머금고 뱉어내었다.
“퉷-!!!”
물을 뱉어내고 고개를 돌려 자성을 바라보았다. 다급하게 서류를 넘기는 자성의 혼란스러운 모습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내가 알아서 한다.]
청은 손을 내밀어 시린 빗물을 두 손에 담아 얼굴을 씻어 내었다.
모든 것은 이미, 정리 되었다.
신우의 파일이 끝나고 석무의 경찰학교 제복을 입은 사진이 보였다. 자성의 손이 더 빨라졌다. 석무의 인적사항과 인사기록이 적혀진 서류가 끝이 났고, 그 뒤는 없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툭.
서류를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풀리며 서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성은 석무가 자신과 같은 경찰이었다는 것을 인지할 틈도 없이, 몸을 잠식해 오는 안도감에 그제서야 숨을 토해내었다.
“저 씨발년은 알아서 처리해.”
정청의 명령에 얼굴이 엉망이 된 연변거지가 자성을 지나치며 이를 갈았다.
“저 놈의 애미나이. 죽여 달라 매달리게 만들 것어.”
자성은 그제서야 드럼통에 든 나체의 신우가 떠올랐다. 드럼통을 향해 걸어가는 연변거지의 등에 꽂혀 있는 권총이 눈에 들어왔고, 자성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거지의 총을 뺏어들고 드럼통 앞에 섰다.
머리위로 그림자가 드리우자 간신히 숨을 쉬던 신우가 자성을 올려보았다.
자신을 향한 총을 쥔 손이 형편없이 흔들리고 있었기에 그가 얼마나 고뇌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신우는 창백하게 질린 자성과 시선을 맞추며 동정의 시선을 보내었다.
몇 일 전. 기원에서 강과장의 새 오더 덕분에 자성의 희망에 찬 표정이 산산이 부수어 지는 것을 눈앞에서 바라보았던 신우는 그가 이 더러운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도, 깡패도,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채, 거친 손길에 흔들리는 꼭두각시.
그게, 자성의 위치였다.
‘불쌍한 사람.’
자신도, 그도. 필요 없어진다면 쉽게 버려질 카드였다. 이 일을 대신 할 사람들은 많았고, 강과장에게 자신들은 중요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아니, 그에게 중요한 인물이 있기는 할까?
출장소가 발각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되는 것이었고, 정청의 오른팔인 자성도 오랜 시간동안 정성들인 것이 다른 패들보다 조금 아까울 뿐, 그가 제거 된다면, 그 자리에 다른 이를 심어 자리를 매울 터였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뜬 신우는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자성을 바라보며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팀장님, 아니, 과장님... 건강이 나빠지셨던데, 담배. 끊으셔야 하는데... ’
신우는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하는 마지막 생각이, 아버지 같은 강과장의 건강 걱정이라니.
탕... 탕탕... 탕!!!
자성은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을 주어 신우의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기적이게도 신우의 죽음이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얼굴이 총알에 관통당해 형체가 사라져 갈수록 안도감의 무게가 심장 박동을 느리게 억눌렀다. 혹여,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불어버린다면 그 다음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자신은 강과장이 원하는 골드문 자료를 넘겨야 할 터였고, 자신을 짖누르는 죄책감에 밤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