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이 자성의 둥근 무릎을 가볍게 쓸고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자성이 못 이긴 척 소파에서 내려가 청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쪼그려 앉은 폼이 여수에서 일 끝내고 술 한 잔 기울이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쪼륵-
청의 손이 기울자 투명한 유리잔에 술이 일렁이며 수면을 높여갔다. 몇 잔을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잔 끝을 가볍게 부딪치고 비우기를 수십 번, 테이블 위에 빈 술병들이 늘어갔고 자성의 눈도 반 쯤 감겨있었다. 자성의 검지와 검지 사이에 무거운 술잔을 아슬아슬 하게 매달려 있었다.
자성의 입술이 무언가를 전하기 위해 몇 번을 들짝였지만, 본능이 움직여 입술에 잔을 물렸고, 자성은 입에 맴도는 말을 술과 함께 목으로 삼켜버렸다.
평소와 다르게 농담 한 자리 없이 묵묵하게 술을 마시던 정청이 옆이 조용해진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자성을 바라보았다.
테이블과 소파 사이, 그 좁은 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든 흐트러진 자성의 모습에 청은 잔에 남은 술을 모두 입으로 털어버리고 잔을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씨발, 자냐.”
“.......”
“미친새끼. 느 참말 넉살도 좋다. 내 옆에서 잠이 오냐. 씨팔놈아.”
청은 자신의 옆에서 잠이 든 자성이 어이가 없어 킬킬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자켓은 소파 위에 있었고, 언제나 단정했던 셔츠가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더 가관인 것은 언제나 목 끝까지 매고있던 넥타이가 풀려 느슨해져 있었다. 청이 자성의 얇은 목으로 손을 뻗었다.
지금이라면 조금만 힘을 주면 고통없이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성의 목에 닿은 정청의 손가락들이 선을 따라 흘러 내렸고, 올가미 같이 목에 메어져 있는 까만 넥타이를 손에 움켜쥐고 풀어내었다.
손을 거두려던 정청의 까만 손가락을 잡는 흰 자성의 손가락에 청이 화들짝 놀라 자성에게 시선을 옮겼다.
“흐미! 깜짝이야. 씨벌! 애 떨어질 뻔 했잖냐.”
가늘게 눈을 뜬 자성이 무겁게 눈을 깜박이며 아무 말 없이 정청을 바라보았다.
청은 자신의 약지와 새끼를 힘없이 잡은 자성의 손이,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움켜쥐는 어린 아이의 행동과 같아 손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씨발, 많이, 힘드냐.”
마지막 숨을 놓지 못하는 사람처럼 가물가물 눈이 뜨이는 것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늘게 눈을 뜬 자성을 향해 청의 다정한 한 마디가 던져졌다.
“느 그라고 힘들면, 씨발, 이제 그만 혀라.”
청은 대답하지 않는 자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감겨 있는 자성의 눈 꼬리로 밀려난 눈물을 발견하고는 자성의 손에 잡힌 손을 가만히 두고 다른 손을 뻗어 눈물을 훔쳐내었다. 그리고, 손을 내려 지난 몇 시간 동안 무척이나 야윈 뺨을 쓸어 주었다. 그렇게 한 참 동안 자성을 다독이던 정청은 자성의 숨소리가 일정해 지자 자성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어내 자성의 몸을 품에 안아 들었다.
“씨부럴, 사내새끼가 존내 부실허다. 뭐 처먹고 다니기는 허냐.”
정청은 자신과 비슷한 키를 가진 자성의 몸무게가 두 팔에 너무나 가볍게만 느껴져 안쓰러워 작게 잔소리를 뱉어내었다. 몇 걸음 움직여 방에 있는 넓은 침대에 자성을 눕히자 몸을 뒤척이던 자성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체온을 찾는 것인지 또 몸을 웅크렸다.
정청은 웅크린 자성의 몸 위로 이불을 끌어 덮어주었고 곤히 잠든 자성을 가만히 바라보다 허리를 숙여 자신의 갈라진 입술로 자성의 얇은 귓불을 조심히 부볐다.
자성의 차가운 귓불이 뜨거운 입술에 닿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 선명한 감촉으로 흐릿하게 사라질 것 같은 자신의 브라더가 자신의 침대 위에서 단 잠에 빠져 있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 했다.
입술을 살짝 내려 길게 뻗은 목선을 따라 입술을 움직였다.
시큼한 땀냄새와, 바다의 짠내, 그리고 살 내음이 코를 간지럽혔다.
자성이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츠리자 청은 입맛을 다시며 입술을 때어 내었다.
그리고 자성의 옆에 벌렁 누워 자성의 몸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보이는 자성의 둥글게 말린 등이 점점 작게 말려 사라질 것 같아 손을 뻗어 등을 한번 쓸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