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을 가로질러 걷던 정청은 자신을 향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해 몸을 굴렸다.
“씨빠! 좆같은 새끼들이 눈깔은 어따가 달고 운전하냐!”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에 성질이 나있던 정청은 자신을 치려고 달려든 자동차를 향해 걸쭉하게 욕을 뱉어내었다.
쿵!
차체가 구겨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차문이 열리고 칼을 손에 쥔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씨발, 니들 지금 뭐하자는 수작들이냐! 니들 오야가 시키던? 개새끼들아!”
그들은 정청의 말에 대답 없이 그들의 두목이 짓는 비웃음을 흘리며 정청에게 다가왔다.
와아아아!!
제법 많은 사람의 함성소리가 곰팡이 냄새가나는 지하주차장을 뒤흔들었다. 고요하던 지하주차장에 사내들이 뒤엉키며 순식간에 지옥도의 한 장면으로 변했다.
중구쪽 패거리가 놓친 칼을 들고 싸우던 정청은 자신의 팔을 잡고 이끄는 부하들에 의해 억지로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칼부림으로 피범벅이 된 곳을 까만 차 한 대가 정청과 얽힌 무리들을 밀고 지나갔다.
정청은 까만 코팅 너머로 보이는 흰 손과 눈에 익은 차 넘버를 확인하고는 자신들의 패거리에게 물러나라고 외쳤다.
벽에 부딪혀 일그러진 차가 기어를 바꾸더니 차를 둘러싸는 재범파를 향해 가속도를 붙여 후진을 했다. 자성의 차로 꽤 많은 인원이 바닥에 쓰러졌지만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재범파의 사람들이 꾸역꾸역 지하주차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자성은 기어를 바꾸고 엑셀레이터를 밟았지만 차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짧게 욕을 뱉어내고는 차문을 열고 그 아수라장으로 뛰어 들었다.
땡-.
유치할 정도로 익숙한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리고 등 뒤로 문이 열렸다. 본능적으로 싸늘한 기운을 느낀 정청은 다급하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순간,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자신의 몸을 밀쳐내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유려한 선을 가진 사내의 등이 보였다. 사내의 손길에 밖으로 밀쳐내진 정청이 그를 향해 손을 뻗어 보았지만 밀려난 틈 사이로 순식간에 재범파들이 꾸역꾸역 밀려왔다.
“씨부럴! 비켜 이 개호로새끼들아!!!”
자신 대신에 일곱 개의 우악스러운 손과 날카로운 칼을 마주한 남자의 이름 대신 입에 붙은 욕설이 정청의 입술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똥인지 독인지 구분도 못하는 씨발새끼들아!!!”
정청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노로 눈을 부라리며 흰자위를 새빨갛게 물들인 정청은 자신을 가로 막는 재범파들을 몸뚱이에 미친 듯이 칼을 담그며 얼리베이터 앞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간절하게 피에 젖어 미끌거리는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지만 까만 알림판에는 ‘운행정지’라는 글자와 함께 주황색의 ‘B1’이라는 글자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급함을 느낀 정청이 바쁘게 손을 놀리며 자신을 공격하는 재범파 행동대원들을 다시 쳐내며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두드리고 두 손으로 억지로 비틀었다. 굳게 닫힌 철문은 피에 젖은 손아귀에서 미끄러질 뿐이었다. 차가운 엘리베이터는 먹잇감을 삼킨 괴물의 입처럼 굳게 닫힌 채 꿈쩍하지 않았다.
정청은 다시 한 번 까만 알림판의 B1을 확인하고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
철컹.
엘리베이터를 멈춘 재범파들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서려 있었다.
분명 자신들은 파마머리의 정청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보이는 것은 그의 오른팔인 이자성 이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누구 하나 허투루 움직이지 못했다.
침묵을 깬 것은 이자성 이었다. 무기를 쥐기 위해 칼을 노리고 주먹을 뻗었다.
칼부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네모난 작은 상자에는 등을 숨길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여덟 명의 남자들의 발이 바쁘게 움직였고 누구의 피인지 모를 피들이 벽과 천장을 가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칼날을 맨 손으로 잡아내느라 자성의 손바닥이 잘려갔고, 사람의 손은 두 개 뿐이라 일곱 개의 칼을 모두 피할 수가 없었다.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었다.
뱃가죽을 찢고 들어오는 차가운 금속을 느끼며 눈앞에 있는 남자의 머리를 주먹으로 쳐냈다.
자성은 마지막 조직원을 처리하고 잘 움직여지지 않은 손가락을 들어 엘리베이터 운행버튼을 돌렸다.
위잉.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쉴 때마다 피 냄새가 짙게 느껴졌다. 그리고, 헐떡이는 숨에 흰 셔츠가 붉게 물든 것을 내려 보며 서글픔을 느꼈다.
이걸로, 조금이나마 정청에게 용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땡.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한 것을 알리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린 틈으로 무장을 한 채 방패를 세우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무장경찰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 되었다.
푹-
엘리베이터의 문이 활짝 열리기 전, 끈질기게 몸을 움직인 한 조직원의 칼이 옆구리에 꽂히는 것을 느끼고 겨우 서 있던 자성의 몸이 무너져 내리며 딱딱한 1층 로비의 대리석 위에 나 뒹굴었다.
시야는 이미 흐릿해졌고 체온을 지닌 피가 밖으로 흘러나가 자신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미안하다고, 해야... 했는데...’
자성은 눈꺼풀을 감으며, 이제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입술을 끌어올려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
정청이 지하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귀에 들려오는 것은 자신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쾅! 쾅쾅!!!
“자성아!!! 이자성이!!!! 대답해봐야!!!”
정청의 외침이 지하주차장을 울리다 사그라졌고 자신의 외침에 대한 답변은 들려오지 않았다.
“저기 있다!”
누군가의 외침에, 방패를 든 경찰들이 정청에게 달려들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억지로 끌어내어 연행해 갔다. 정청이 1층으로 연행되어 오면서 열린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사내들 틈에서 자신의 브라더를 찾았다. 미꾸라지가 한 바탕 뛰논 진흙탕처럼 지저분하게 피칠갑이 된 엘리베이터 안에 일곱명의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가 찾는 얼굴은 그 사이에서 보이지 않았다.
-
형철은 전쟁터의 야전병원이 되어버린 경찰청을 돌아보며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피 냄새가 짙게 느껴졌다.
"여기가 니들 놀이터인줄 알아! 빨리 빨리 끝내고 가자! 니들 때문에 나도 야근이다."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진 내부에 끙끙거리는 앓는 소리들만이 간혹 흘러나올 뿐이었다.
형철이 다시 책상에 시선을 옮겨 정청에 대한 서류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장님!"
"어떻게 됐어."
"저희쪽은 5명 정도 가벼운 부상이고, 골드문은 정청계 조직원들이 20여명 중상, 재범파는 40명 정도가 중상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자성은?"
"수술 들어가 봐야 안다고 합니다."
"알았다. 저것들 잘 감시하고, 조서 잘 받아. 그리고, 조금이라도 떠들면 유치장에 집어 넣어버려."
"네."
부서를 빠져나와 정청이 따로 격리되어 있는 취조실로 향했다.
자신들이 너무 일찍 도착했던 걸까.
정청은 부상을 입긴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 취조실에 앉아 있었다. 오히려, 몇 시간 전 기원을 뛰쳐 나갔던 이자성이 숨이 겨우 붙은 채로 병원에 이송되어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이 꼬였군."
형철은 표정을 갈무리하고 취조실의 문을 열었다.
간단한 처치를 받고 강형철 과장과 마주하게 된 정청은 세파에 찌들어 피곤해 보이는 강과장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우리 과장님이 보청기를 허셔야 할 때가 온 것 같어요잉. 경찰 월급으로는 보청기 하기 어려우신가 봐요잉. 쯔번에 우리 일은 우리가 해결하게 놔두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잉.”
“허, 너 보다는 청력 좋다."
"그라믄 와 아직꺼정 손 붙이고 수술 시키셨어요."
"깡패새끼들 서열 정리해 준다는데, 싫냐.”
“가족 싸움에 짜바리들이 끼어들면 좋겄어요.”
“니들이 가족이냐? 깡패새끼들이지.”
“그렇게 말씀하시다믄, 할 말이 없는 디요, 계속 이렇게 손 담그고 계실꺼먼, 조심하셔요잉. 물고기 잡으시려다가, 물귀신 될 수도 있응께요.”
”내 걱정 말고, 너나 걱정해라.“
정청은 자성이 경찰이라는 것을 안 이후로 이미 변호사가 다 모든 서류를 움직여 놓은 것을 알고 있기에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얼마나 더 잃어야 손을 때실랑가 모르것는 디요. 즈를 건드릴 때 마다, 답변은 확실하게 해드릴테니 걱정은 접으셔요잉.”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것 쯤이야.”
“보아허니, 한 두번 당하신게 아니신가 보내요잉. 그 말 기억했다가. 꼭 말 해줘야 쓰것네요.”
느긋하게만 느껴지는 정청의 미소에 형철은 눈썹을 구겼다.
“즈는 피해자 조서만 쓰면 되지요잉. 내 신상명세야 우리 과장님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 터고, 나머지는 변호사랑 이야기 하셔요잉.”
정청은 웃으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신호였다.
-
형철은 경찰서를 나서는 정청의 뒷모습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그물을 쳐두면 잡혔다가도 미꾸라지처럼 어느새 구멍으로 벗어나 있었다. 형철의 시선을 느낀 정청은 뒤를 돌아보고 씩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다.
“으따, 날이 겁나 좋아 부네. 과장님도 고 어두운데 콱 처박혀 계시덜 마시고, 그 뭐시냐, 피크닉, 피크닉이라도 좀 댕기셔요. 아죠, 고 컴컴한 곳에서만 계신께, 얼굴 썩어 불것어요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