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정청이 수술중이라는 불이 꺼지고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오자 의자에서 서둘러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자신도 칼부림의 속에 여기저기 찢기고 부러져 오른손에는 붕대와 깁스를 했고, 몸뚱이에는 붕대가 칭칭 동여매어져 있었다. 정청의 까만 얼굴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는데,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여기저기 얻어터진 덕에 얼굴이 부어 눈을 꿈뻑 감았다 뜨는 모습이 천상 두꺼비였다.
“경과는 지켜봐야 알겠습니다만, 좋은 상태는 아닙니다. 주요 장기는 수술로 봉합했지만 아직 몇 군대 출혈이 잡히지 않아서 경과를 살펴보고 재수술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슨상님, 꼭, 살려 주세요잉. 갸는 내 친혈육이나 다름 없어요잉.”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녹음기를 튼 것 같은 의사의 말에 정청은 눈썹을 찡그렸다.
“씨발....돈 처먹은 만큼의 값은 해야죠잉. 그게 사람 된 도리 아니것어요. 슨상님.”
“예?예.”
정청은 자신의 욕설에 뻣뻣하게 긴장한 의사에게 손을 뻗어 험악했던 수술 과정을 보여주는 듯 핏자국이 덕지덕지 묻은 초록색의 수술복을 가볍게 털었다.
“슨상님.”
“예.”
"우리 브라더가 죽으면 그짝도 같이 파묻힐 생각 하셔요잉.”
“예?”
“씨팔, 귀에 공구리를 처바르셨나. 목 내놓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주시라구요잉. 진짜 공구리를 쳐바르기 전에 말이여요.”
정청은 굳어버린 의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잘 부탁드려요잉.”
서글서글하게 웃는 정청의 얼굴에 살기에 몸이 떨리는 의사도 마주보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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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이 다음날 열리는 주주총회에 참가했고 그는 자신이 직접 내서지 않고, 장수기를 회장으로 내세웠다.
많은 이사들이 정청의 행동에 웅성거리며 정청이 몇 일 전 세력 싸움에 진 모양이더라고 수근 거렸다.
그 말을 들은 정청이 눈을 들어 이사들을 한번씩 둘러보았다.
'씨발, 썩어빠진 늙은 얼굴들 잘 기억하고 있어야 되겄네.'
“선배님들이 두 눈 떡 하니 뜨고 살아 계시는디, 제가 가히 어떻게 회장 자리에 앉겄어요.잉. 순서대로 해야죠잉.”
정청은 장수기를 바라보았고 장수기는 불길함을 느끼며 눈을 굴려 다른 이사들을 살폈다.
자신이 강과장 이라면 자신들이 직접 수술해서 종이호랑이도 되지 않는 늙은 여우인 장수기를 바지회장으로 내밀고 마구 자신들의 손에 넣고 주무르다가 실컫 이용해 먹고 서서히 골드문이 주변을 정리 하면, 결국에는 골드문도 소탕하는 것이 이상적인 계획 이었다.
이사들도 눈동자를 굴리며 다문 입을 열었다.
“그,그려, 선배를 공경 해야제. 우리 정이사가 예의를 알고만.”
“그라믄 장수기이사님이 회장직을 하는 것에 이의 없으신 거지요잉.”
이사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청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사들이 정청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몸을 웅크리며 정청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데굴데굴 굴리는 폼이 눈동자가 곧이라도 튀어나와 책상에서 굴러다닐 것 같이 우스웠다.
“뭘 그라고 놀라셔요. 즈가 쪼까 다쳐서 먼저 일어 나것슴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정청의 시선이 비어 있는 자성의 자리에 시선이 한 번 머물다가 몸을 돌려 회의장을 나섰다. 정청이 담배를 꺼내어 입에 하나 물고 등 뒤로 닫힌 회의장을 돌아보았다. 늙은 너구리들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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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자성이 입원해 있는 병원 이었다. 병실 문 앞을 지키는 험상궂은 사내들이 허리를 숙여 정청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는 병실 문을 열어 주었다.
사람이 움직인 흔적이 없는 병실에는 환자상태 모니터의 일정한 소리만이 자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자성의 창백한 몸 여기저기 빼곡하게 붕대와 반창고가 붙어 있엇다. 붕대로 붉은 기가 올라온 부분부분 제법 깊은 상처들도 눈에 띄었다.
‘느 짜바리 새끼람서, 내가 누워 있어야 할 자리에 왜 느가 왜 누워 있냐.’
정청이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한 말이 시선에 실려 자성에게 향했다.
자성의 가슴이 부풀었다가 내려앉았고, 호흡기가 씌워진 자성의 창백한 얼굴에는 평소에 보이던 희미한 혈색마저도 보이질 않았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자성을 보며 정청은 손을 뻗으려다가, 겨우 이어 붙여놓은 몸뚱이가 부숴질 것만 같아 허전한 손을 주니에 찔러 넣어 애꿎은 동전을 손에 쥐고 다른 동전으로 긁어 내렸다.
드득드득.
그가 생각을 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동전끼리 부딪히는 둔한 소리가 귓가에 거슬리게 맴돌았지만, 아무도 그의 행동을 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빨랑 일어나라. 씨빠, 브라더. 이 형님. 느므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정청의 말에 반박하는 자성의 목소리 대신 산소 호흡기의 공기가 새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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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사절 모르냐. 짱깨새끼.”
자신을 발견하고 무표정한 눈썹을 구기는 중구의 모습에 정청은 언제나 처럼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씨발, 느 존나 말 이쁘게 한다. 큰집에 몇일 있더니, 얼굴 겁나 좋아 뵌다. 고깃덩어리로 배때기에 기름칠 할 때보다 더 좋아 뵈야. 큰집 밥이 네 입에 맞나 보네잉.”
“헛소리는 네 시다바리한테 하고 빨리 끝내자. 피차 얼굴보고 안부 묻는 살가운 사이 아니잖아.”
“씨부럴, 알았응께 고 가벼운 궁둥짝 좀 의자에 붙여봐라잉. 내가 할 말이 쪼까 있어서 왔응께.”
“헛소리 작작하고 용건부터 말해 짱깨새끼야. 너한테 할애하는 시간이 아까워 뒈지겠으니까.”
“씨발, 거서 뭘 쳐드셨길래 들어가기 전이나 후나 변한 게 없냐. 존내 살아있는 내 얼굴 보니께 감회가 새롭지야. 중구야.”
“네 더러운 입에 내 이름 올리지 마라 짱개새끼.”
쾅!
“니 무덤파는 짓거리를 왜. 했냐고. 씨발!!!”
중구의 비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청은 웃음을 지우고 중구와 자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내려쳤다. 중구의 얼굴에 한방 먹이려는 행동처럼. 정청은 팔을 타고 느껴지는 반동에 자신의 몸뚱아리가 보내는 통증을 무시했다. 아직 가라앉지 않는 눈덩이를 부라리며 벽을 부수려는 듯이 손가락 끝으로 벽을 긁어내렸다.
“느 여서 반성 좀 하다와라. 씨발, 내가 보아하니, 네가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뵈인디. 니 한 평생을 여서 홍어 좆 같이 푹 썩어야 좀 깨닫것다.”
중구가 지지 않으려 정청을 흉흉하게 노려보며 사진을 내밀었다.
“시작은 니가 했어 프락찌새끼야.”
“허!”
정청은 강과장과 같이 찍힌 사진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골드문의 후계자 싸움에 자꾸 끼어드는 강과장에게 월병으로 감춘 돈을 찔러주었던 그때 였다.
능력도 좋게 각도를 잘 잡아 자신과 강과장만 나온 사진에 정청은 어금니를 꽉 맞물었다.
“썩을, 후레자식새끼. 니 지금 이거 믿고 그 지랄을 떤거냐. 허, 허허. 니 눈은 동태눈깔이냐 중구야. 성격이 개지랄 같아서 그러는 줄 알았고만, 이제보니 눈 뜬 장님새끼였네. 프락찌면 내가 왜 아덜 대리고 강과장 만나고 지롤 이겠냐. 큰집에서는 니 눈깔 고쳐줄 의사는 없는 갑다잉?“
"왜? 변명이 그것밖에 안 되냐? 다른말 하지 말고 말 똑바로 해. 짱개새끼야."
정청의 비꼬는 말에 중구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씨발, 그렇게 못 미더우면 니가 쳐 나와서 알아보던가! 씨발놈아. 여기 처박아두고 몇 년 푹 썩히면서 반성 좀 시킬라고 했더니마, 안 되겄다. 조만간, 나와서 물 좋은 인천 앞바다에서 보자. 중구야. 니가 나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참말로 몰랐어야. 씨바.”
정청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름에 미묘하게 눈썹을 찡그리며 뒤돌아선 정청의 곱슬곱슬한 뒷통수를 노려보았다
감히 자신을 우롱하고 자신의 앞에서 쉽게 등을 보이는 정청의 행동에 분노를 느꼈다.
“이거나 처먹어. 짱깨새끼야.”
중구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이 밀었다. 정청은 뒤돌아보고 어린아이 보는 가소로운 시선으로 중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씨발, 니 여서 나오면 그 손가락부터 씹어 처먹어 줄테니께,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쳐자빠져 있어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