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은 죽어버린 양변호사의 후임으로 온 변호사에게 강과장의 모든 자료를 다시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강과장에게 파이프를 꽂아 쪽쪽 끌어 올리다 보니 의외의 인물이 거름망에 걸려 졌다.
중구의 재범파 애들이 자성을 찾아 자성의 집을 덮칠 때 배에 아이를 품고 있던 여자.
항상, 주경의 얼굴을 닮은 아이를 낳으라고 했지만, 사실 그가 보고 싶은건 자성의 뽀얀 얼굴을 닮은 아이였다.
주경은 재범파가 자성을 덮치기 위해 집을 습격했을 때의 충격으로 아이를 유산하여 병원에 입원 중 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산모도 위험했다고 하는 의사의 말에 부부가 똑같이 지랄이라고 욕을 했던 것 같았다.
“씨빠, 좆같은 새끼들.”
약쟁이 아버지 병원비를 벌기 위해 굴러들어간 술집에서 골드문의 서열 5위인 자성과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임신했던 여자.
똑부러지는 성격과 무서운 것 없어 보이는 시선이 자성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을 느꼈기에 자신도 마음에 들어 하던 차였다.
“씨발.”
정청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를 내려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강과장은 이자성의 배신이 두려운 걸까?
자성의 오른팔이었던 석무. 그리고 자신의 패거리에 섞여있는 몇몇의 짜바리들이 그 논리를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권력, 재물,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패거리들. 잦은 야근과, 코딱지만한 월급, 산재도 잘 처리되지 않는 경찰의 생활을 비교 했을 때, 모두 가진 자성이 흔들리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자성이 유혹을 이기지 못해 등을 돌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자신이 8년간 지켜본 바에 의하면 자성에게 권력과, 재물 그리고 사람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것들 이었다.
강과장에게 이자성은 여느 인간들과 똑같이 부리는 패일 뿐이다. 그러기에 서로를 감시하게 시킨 거겠지.
자성의 성격이라면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지난 8년간 경찰과 깡패 사이를 오고가며, 입으로 투정을 부리며 개같이 복종했을 터였다.
"뭣 땀시, 짜바리가 그렇게 되고 싶은 거냐."
자성은 주경이 강과장이 심어 놓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주경을 쳐 낼 수 있을까?
아니, 그러지 못할 터였다. 자성은 주경에게 많은 정을 쏟아 주었고 주경도 자성에게 정을 많이 쏟았을 터였다. 자성이 주경을 만나 정착하면서 귀엽게 가정도 꾸리고 아스라질 것 같은 분위기가 줄어들었기에 정청도 주경에게 항상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정청이 주경의 프로필이 적힌 서류를 들춰보는 내내 꺼름직하기만 했다.
결국, 자신이 형님이라는 직함아래 주경을 뜯어내야 했다.
"왜 일케, 진짜 뭣같냐."
주경을 뜯어내고 나서 피를 철철 흐릴 자성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자성을 살리기 위해서. 자성을 좀먹는 팔을 잘라내고, 심장을 도려내는 집행관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
정청은 일과를 끝내고 늦은 저녁 주경이 입원해 있는 산부인과를 향했다.
산부인과에 도착한 청은 수행원 둘에게 병실 앞을 지키게 하고 노크도 없이 병실 문을 열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주경의 곁에 서서 싸늘하게 바라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주경이 눈을 뜨고 잠을 떨쳐내었다.
“......정.청형님?”
“아따, 내가 우리 제수씨 잠을 깨워 버려 붓네. 내가 말은 못 돌려서 하니까요. 이해 허요.”
“네? 자성씨에게 무슨 일 생긴 거예요?”
주경은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정청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더듬어 간호사를 호출하는 버튼을 찾았다. 정청의 눈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주경의 손을 낚아챘다.
자신이 주경의 팔을 부러뜨릴 듯이 세게 움켜쥐자 주경의 얼굴이 공포에 휩싸였다.
“허튼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잉. 아들이 병실 밖에 서서 아무도 못 들어온께. 제수씨. 강과장이랑 붙어먹었소?”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정답인가 부네. 이 씨발년아.”
정청이 당황해 하는 그녀의 표정을 읽었고 욕과 함께 주경의 침대로 바짝 다가서서 머리카락을 우왁스럽게 잡아 침대에서 끌어내렸다.
“꺄-읍읍!!!!!”
비명을 지르려는 주경의 입술 위로 정청의 두터운 손이 얹혀졌다.
“씨발! 지금 내 브라더가 침대에 누워 있어서 나도 재정신 아니니까, 빨리 빨리 하고 끝내자 씨발년아. 누가 네년한테 이자성이 마킹하라고 붙여놨냐고. 씨발년아. 우리 싸게싸게 하고 끝내자잉.”
-
주경의 양쪽 뺨이 푸르게 멍들어 있었고 머리카락이 바닥에 뽑힌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병실 구석에 몸을 웅크린 주경이 작은 어깨들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으흐흐흑.”
“그만 처 울고. 몸 추스르는 대로 꺼져라잉. 내가 알아서 다 해놓으테니까.”
“흑흑. 자, 자성오빠한테 제가 평생, 평생 갚을게요.”
“씨발, 내가 곱게 대우해 주니까. 내가 니년한테 좆같이 보인갑다. 카악- 퉷! 다시 술집에 가서 가랑이 벌리고 떡치게 만들어 주리? 아님, 니 장기 다 뽑아다가 팔아 먹고 니년은 뒈지게 놔둘까?”
울음이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짜증스럽게 들려와 바지를 붙잡는 주경의 손을 털어내고 바닥으로 쓰러진 주경의 아직 꺼지지 않은 배를 걷어찼다.
“아아악!!!”
“씨빠, 내가 니년 배에 조카님을 배고 있던 때가 있어서 좋게좋게 이야기 하면 알아서 알아쳐드셔야지, 귀에 공구리를 처발랐나.”
빈 배를 두 팔로 필사적으로 감싸는 주경의 모습을 보며 다시 머리채를 움켜쥐어 들었다.
“엄살 고만 피우고. 다신, 한국에 발 붙일 생각일랑은 말고 보내준다고 할 때 가라잉. 내가 강과장한테 이용만 당한 니년이 불쌍혀서 그러는 것인께. 알것냐.”
“흐으으윽.흑.”
주경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청의 손이 그제서야 주경의 머리채를 놓고 병실을 나섰다.
-
주경이 법원에서 자성의 이혼 절차를 끝내고, 법원 앞에 서 있는 정청의 차로 다가가자 차 문이 열렸다. 자신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새까만 입을 연 차로 몸을 실었다. 어두운 실내에서 큰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정청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요."
주경이 이혼서류가 든 서류봉투를 정청에게 넘겼다. 정청은 이혼 서류를 꺼내어 확인하고 주경을 차에 태운 채 차를 출발 시켰다.
“저...자,자성오빠 얼굴 한번만... 한번만 보고 가게 해주세요. 절대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게요.”
정청은 자신의 팔을 잡고 매달리는 주경의 손을 내려보고 몸을 돌려 거침없이 뺨을 내리쳤다.
짜악-!
차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변하자 앞에 앉은 수행원들이 거울로 정청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경은 뇌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정청을 돌아보았다.
“곧 나가야 허는 사람인께, 봐주는 거여. 그 주둥이에 그 이름 한 번만 더 씨부리면, 그땐 문 열고 도로에 내쳐버릴 텐께.”
주경은 보이지 않는 까만 유리 너머 자신을 노려보는 정청의 시선이 살기 흉흉하여 뺨을 손으로 감싸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공항에 도착한 정청은 게이트 너머로 주경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이 바뀌어 다시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렇게 주경을 비행기에 실어 보내고 공항에서 차를 몰아 자성이 입원해 있던 병원으로 돌아갔다. 도로변 가로수길에는 봄을 알리듯 꽃봉오리들이 손톱만하게 맺혀 있었다.
"씨발, 벌써 봄인갑네."
청은 그 단단한 봉오리들을 보며, 꽃이 만개하여 허물어져버리 전에 자성이 눈을 떠,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꽃구경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