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동물 간의 우위 관계는 그들이 서로 마주쳤을 때 각자가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사회적 자유의 정도에 의해 드러난다.
- 세계의 늑대 中 에릭 지멘 -
장수기는 이중구가 다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석동출의 오른팔 이었던 이중구는 철저하게 힘의 먹이사슬로 이루어진 서열관계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아직은 힘이 없는 장수기는 이중구가 돌아오면 분명 자신을 회장 자리에서 끌어 내릴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청을 살살 굴리며 자신의 편으로 붙잡으려 노력했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정청은 장수기의 편을 들어주는 것 같으면서도 중립을 유지했다.
결국, 이중구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왔고 그 앞에 정청이 흰 두부를 든 채 서 있었다.
“여, 씨발, 존내 오랜만에 본다.”
“뭐냐?”
중구는 교도소 문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정청의 얼굴에 오만상을 쓰며 정청을 바라보았다.
“니 아새끼들은 지금 너 챙길 정신 없으니께 싸게싸게 가더라고.”
정청이 두부를 던지듯 중구에게 건내 주었고 중구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두부를 슬쩍 옆으로 피했다. 연약한 두부가 바닥에 떨어져 으깨어지자 중구가 발을 뻗어 구둣발로 짓이겼다.
“촌스럽게 이런거 주는 건 언제적 인사법이냐.”
“씨발. 이거 제법 효과 있어야. 느 진짜 사춘기 아니냐? 사람 호의를 고로코롬 무시하면 쓴다냐. 아따, 입씨름 할 틈 없당께. 싸게싸게 타라.”
“내가 미쳤냐. 짱개랑 같은 차를 타게.”
“씨발. 그럼 걸어올래.”
“네 알바 아니니 신경 끄시지.”
“씨발, 중구야. 내가 니 모가지만 따로 가지고 가면 훨- 편할 것 같은디, 어쩌게 생각허냐? 씨발놈아.”
“허, 거. 이 씨부럴 새끼야. 존 말로 처 할 때 들어야. 주댕이 아프다. 내 차 타기 싫으면 뒷차 타고 오고.”
정청은 어차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기도 싫었다. 차를 두 대 끌고오길 잘했다고 생각 하며, 얼굴을 구기고 삐딱하게 서 있는 중구를 바라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앞 뒤 재지 않고 칼을 들어 배를 갈라버리고 싶었지만, 빈 주먹을 꽉 쥔 채로 영업용 미소를 유지하며 중구를 향해 말을 건네었다.
“비싸게 굴지 말고 타라잉. 새끼야. 먼저 가서 기다릴텐께.”
“.......”
정청이 창문을 올리고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고 그 뒤를 따르던 차가 중구의 앞을 가로 막으며 섰다. 차 문이 열리면서 조직원들이 내려 중구를 차로 안내 했다. 중구는 멀어져가는 정청을 차를 흘겨보고 자신의 앞을 가로 막은 조직원들을 훑어보았
다.
2대 1.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싸우면 분명 이길 수 있는 승산 있는 싸움이었기에 자신을 우습게 본 것인가 싶어 자신의 앞을 가로 막은 조직원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같이 가시죠.”
“손 대지마 짱개새끼들아. 알아서 갈테니까.”
어차피 자신의 수하들이 정청을 친 날 대부분이 교도소행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빨을 내밀고 정청의 목을 물어 뜯기 위해서는 잠시 손톱을 숨겨야 할 때였다.
정청의 수하들이 중구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비웃으며 중구가 차에 올라탔고 부드럽게 출발하는 차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구름 하나 없이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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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길로 접어든 차가 골드문 본사 앞에 멈추었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조직원이 내려 차 문이 열어주었다.
“내리십시오.”
중구는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건물 내부에 내심 안도하며 수행원이 안내하는 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땡.
엘리베이터가 멈춘 곳은 제일 끝 층이 아니라 정청의 사무실이 있는 층이었다.
중구는 카펫 위로 발을 옮기며 익숙하게 걸음을 옮겨 사무실 문을 열자 정청이 책상에 너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씨발. 쪼까, 늦었다?”
중구가 시선을 돌리자 책상에는 화려한 용으로 조각되어진 명패에는 ‘이사 정 청’ 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무슨 생각이야 짱개새끼. 장수기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또 늙은이 뒤처리나 하다 늙어 죽으라는 거냐?”
중구의 얼굴이 험하게 구겨지며 책상 앞으로 걸어와 책상을 손으로 쓸어내었다.
정청은 자신의 명패를 손으로 받아내고 다시 제자리에 명패를 놓았다.
“이게 얼마짜리인지 알어? 씨발, 니 돈 주고 산거 아니라고 함부러 던지지 마라. 씨발넘아.”
“내가 장수기 끌어 내리고 너도 끌어 내릴 테니까 목 닦고 기다려. 짱개새끼야.”
“그래도 한때는 느 형님이었어야. 씨발, 고상하게 대화로 풀어보려고 했더니마능, 안되것네. 씹새끼야. 자기 밥그릇 몰라보고 달려드는 놈한테는 매가 약이지잉. 안그러냐. 씨발!”
정청의 말에 욕을 뱉어내려던 중구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정청의 주먹을 피해 몸을 옆으로 움직였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책상을 밟고 선 정청의 발이 중구의 가슴팍에 날카롭게 꽂혔다.
“컥!”
갈비뼈를 부수어 버릴 듯한 충격에 헛숨을 들이킨 중구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두 발로 버티며 책상 위의 정청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정청은 중구의 주먹을 쳐내며 중구의 머리를 향해 발을 움직였다. 중구가 몸을 숙여 발을 피했고 정청의 발목을 손으로 잡아 당겨 무게 중심을 무너뜨렸다.
쿵!
정청은 책상 위로 엎어지며 중구의 머리를 향해 발을 내질렀다. 버티는 정청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중구의 머리를 정청의 발이 사정없이 가격 했다.
중구가 머리의 충격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틈을 타 정청이 책상에서 중구의 몸 위로 뛰어 내렸다.
“씨발, 고만 개겨라. 개새끼야!!!”
“큽!!!”
정청은 쓰러진 중구의 몸 위에 올라 앉아 얼굴을 인정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고 팔을 들어 얼굴을 방어하던 중구는 몸을 비틀며 재떨이를 손에 쥐고 정청의 머리로 휘둘어 아래에서 벗어났다.
“이 짱개새끼가!!!”
정청의 이마가 찢어졌지만 개의치 않고 몸을 움직였다. 중구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정청이 중구의 가슴 위로 구둣발을 올려 내리 눌렀다.
“씨발, 내가 말 했잖냐. 귀에 공구리를 처발랐나. 존내 말도 안 처듣네. 니 머리가 꼴통이냐. 평소에는 눈치도 겁내 빠른 새끼가 오랜만에 바깥 공기 쐬니까 뵈는 게 없는 갑다. 니 아들은 이제 골드문에서 손에 꼽아야. 네가 아직도 이이사인 것 같냐. 개새끼야. 내 아래에서 조용히 아가리 닥치고 기어. 새끼야. 목 따버리기 전에. 알긋냐.”
중구는 인상을 구기며 정청의 발밑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비틀었지만 정청은 꿈쩍하지 않았다.
“죽이지 그래. 난 짱개 새끼 밑에서 허리 숙일 일 없으니까.”
짜악-
정청의 거친 손바닥이 중구의 단단한 뺨을 거침없이 내쳤다.
“씨발, 정신이 쪼까 덜 돌아 왔는 갑다. 내가 큰집 가서 마저 대꼬오리? 중구야.”
“아씨! 이 짱개새끼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모르냐. 씨발. 니는 니 목숨이 아홉 개는 되는 갑다. 씨발, 우리가 형제라지만 빚은 마저 청산 해야제. 중구야.”
정청의 발이 중구의 가슴에서 내려가는 듯 싶더니 다른 발로 중구의 얼굴을 축구공 차듯이 사정없이 찼다. 반사적으로 중구가 몸을 굴려 머리를 노리는 정청의 발을 피해 몸을 피했지만, 전부 피하지는 못해 머리가 흔들렸다.
“퉷-! 이 새끼가 아까부터!!!”
중구가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자 정청은 성큼성큼 다가가 자신의 발을 중구의 배에 꽂아 넣으며 손에 잡히는 대로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두 마리의 짐승이 서로의 목을 노리며 엉켜 싸우는 동안 사무실이 엉망이 되어갔다.
캉!!!
중구는 깨진 명패의 날카로운 끝부분이 산산이 부숴지면서 작은 가루들이 왼쪽 뺨을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투명한 명패가 조각이 피에 붉게 물든 채 파르르 몸을 떨었다. 중구는 자신의 몸을 깔고 앉은 정청을 잡아먹을 듯 흉흉하게 노려보았다.
“카악-! 퉤! 씨발, 니 배 따구에도 횟칼 한번 담구고 싶은디, 개같이 부려 먹으려면 사지 멀쩡해야 하니께, 봐주는 거여. 씨발놈아.”
정청이 핏물이 고인 침을 바닥에 뱉어내고 깨어진 명패 조각을 멀리 던져버리고 손에 흐르는 피를 흰 옷에 쓱 닦아내었다.
말 그대로 들개의 싸움처럼 오직 몸으로 뒤엉켜 싸운 두 남자는, 처음 서로 마주 했을 때의 단정한 모습을 한 군대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렇게 격식을 차리는 중구마저도 단정하게 넘긴 머리가 엉망이 되어 있었고, 흰 셔츠는 구겨지고 단추가 뜯어져 제 기능을 하지 못 할 것 같았다.
거칠어진 숨을 고르던 정청은 반항이 멈춘 중구의 몸 위에서 엉덩이를 때고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씨빠, 이걸로 빚 청산은 다 한거여. 병신새끼야.”
중구에게 내밀어진 손에서 피 냄새가 짙게 느껴졌다. 중구는 손을 거슬러 올려다보며 정청의 몸을 훑어 보았다.
흰 정장에 묻은 피가, 검게 그슬린 손에 맺혀있는 핏방울이. 지독하게도 잘 어울렸다.
자신이 잘 길들여진 사냥견이라면, 정청은 길들일 수 없는 야생의 늑대였다.
“지랄하고 있네.”
숨을 고른 중구가 정청의 손을 무시하고 혼자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고 옷을 신경질적으로 털어내었다.
“아따, 씨발놈. 고 주둥이는 절대 안 죽는다잉. 씨발, 브라더 목소리맨키로 시베리아구만.”
“네가 애지중지 하는 그 이자성이 그 개새끼는 왜 안보이냐.”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진 중구의 말에 정청은 주먹을 힘주어 쥐었다. 힘을 주어 주먹 쥔 손바닥의 상처가 어긋나며 멈추었던 피가 주륵- 매끄러운 바닥으로 떨어졌다.
“씨빠, 내 브러더 생각만 하면 네 사지를 찢어 버려도 시원찮겠지만, 빚은 오늘로 청산하기로 했응께, 씨발, 참는 거다. 개호로새끼야.”
순간, 정청의 갈색 눈동자에 살기가 들어났다 아래로 가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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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중구가 나중에 알아보니, 정청 대신 엘리베이터로 뛰어 들어간 이자성은 그 날 이후 혼수상태에 빠진 채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듣게 되었다.
색색의 과일이 가득 담긴 과일 바구니를 한 손에 들고 병실 문 앞에 선 중구는 문을 쉽게 열지 못하고 서 있었다.
문 앞을 지키는 행동대원들이 그런 중구의 모습을 의아하게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후-.”
긴 한 숨과 함께 문고리에 손을 얹은 중구가 손에 힘을 넣어 문고리를 돌렸다.
“오널은, 날씨가 지랄맞게 좋아야. 이 때 쯤이면, 여수에 벚꽃이 한창이것다.”
넉두리를 하는 정청의 목소리가 조용한 병실을 깨우고 있었다.
“그만 쳐자고 일어나라잉. 무신 곰탱이도 아니고 이렇게 오래 처 자빠져 자냐. 느는 내가 안 보고프냐. 이 좇같은 형님이 다 정리하고, 좆빠지게 기다린다. 어여 싸게 눈 떠라. 씨발놈아.”
자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하던 정청은 등 뒤로 느껴지는 바람에 고개를 돌렸다.
그날 다친 정청의 얼굴도 제법 평범한 사람처럼 돌아와 있었고, 상처에 새 살이 차오르고 아물어 갈 때 쯤의 봄날 이었다.
“여, 씨팔! 중구. 공사가 다망하신 씨발새끼가 여기를 무신 낯짝으로 왔냐.”
“거래처 지나는 길에 생각나서, 들렀다. 짱개새끼 얼굴 보려고 온 거 아니다.”
“새끼, 말뽄새하고는, 너 줄 것은 물 한 모금도 없은께 썩, 가라.”
“짱개새끼한테 얻어먹느니 굶어 죽겠다.”
중구는 피식 비웃고는 색색의 과일이 담긴 바구니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아직도, 안 깨어났냐.”
“눈깔 있으면 모르냐. 씨발놈아. 침대에 처 누워있는 새끼가 딴 새끼 겠냐. 씨발새끼야. 그 바구니 필요 없은 께. 빨리 가꼬가라잉.”
”니가 말 안해도 갈 거다. 짱개새끼. 니가 병실 주인도 아니면서 맘대로 결정하지 마 개새끼야.“
한창 둘이 투닥이던 사이에 소리 없이 눈을 뜬 자성이 손을 들어 정청의 손을 건들지 않았다면 그가 깨어났다는 것도 몰랐을 정도로 자성은 정말 조용히 눈을 떴다.
“씨발새끼, 쫄기는. 암튼, 난, 느 여기 오는거 허락한 적 없으야. 씨발 호로잡새끼야. 비위 건들지 말고, 좇빠지게 나가라잉. 잉? 지금 뭐가 손을 건드렸는디.”
중구와 욕배틀을 벌이는 것처럼 살벌하게 말을 주고받던 정청이 고개를 숙여 자성의 손끝이 닿은 자신의 손을 발견하고는 자성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씨바. 부라더.”
깃털마냥 부드럽게 손을 스치는 손가락 끝을 따라 마주한 자성의 까만 두 눈에 정청은 꽉 껴안으려다가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붕대에 엉거주춤 손을 거두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안절부절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존내 오랜만이다잉. 씨발개호로새끼야. 느는 형님이 보고 싶지도 않았냐. 씨발.”
자성은 정청의 인사에 대답하듯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씨부럴 새끼, 니가 슈퍼맨이냐. 느가 거길 왜 튀쳐들어가냐. 씨발.”
정청의 손이 자성을 한 대 때릴 듯 올라갔다가, 힘없이 떨어지며 자성의 손을 조심히 겹쳐 잡았다.
“느 황천강 건너간 줄 알았어야. 씨발놈아. 이 형님 걱정 시키니께 그렇게 좋냐 호로새끼야.”
“미친놈. 욕을 하던가, 말을 하던가 둘 중에 하나만 해라. 짱개새끼야.”
중구가 정청이 말하는 꼴을 보더니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한 마디 끼어들었다.
“씨발, 느 아적 안 갔냐. 씨발, 나를 홍어좆으로 보냐.”
중구를 향해 돌아서려던 정청의 손을 잡아 말린 것은 자성 이었다.
그냥 닿아 있는 것뿐인 자성의 힘없는 손을 뿌리치지 못한 정청이 중구를 바라보며 화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씨발, 빨리 쳐 가라잉.”
자성의 까만 눈동자가 느리게 깜박이며 언제나처럼, 정청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사과를 건네왔다. 중구는 들개처럼 눈이 뒤집힌 정청을 붙잡아 준 자성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곧이라도 달려들어 목을 꺽어버릴 것 같은 정청의 모습을 힐끗 보고 서둘러 몸을 돌려 병실을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