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그랬죠.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형님. 혼자라도 가시겠다고 하는 걸 제가 어떻게 말립니까.]
“느는 나중에 야기 하고, 현관 문 못 열게 혀라! 내 지금 갈텐께잉.”
재현은 ‘이미 열었는데...요’라고 대답한 자신의 말이 정청에게 전해지지 못한 것을 느끼며 이미 끊어져 버린 전화를 바라보았다. 재헌이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 갔다. 재헌은 거실 한 가운데 서서 집안을 둘러보고 있는 자성의 모습을 물끄럼 바라보았다.
“저, 작은형님.”
“...왜.”
“큰형님께서 연락 하셨습니다.”
“재헌아, 넌 그만 가봐.”
“에?”
“바쁜 것 같은데, 가서 일 봐.”
“형님은요?”
“집 좀 치워야겠다.”
경찰이 한 차례 훑고 간 집은 도둑맞은 것보다 더 험하게 뒤집어져 있었다.
자성은 배를 팔로 감싸고 느리게 몸을 움직이며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물건들을 본래 자리로 내려놓았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가.”
무심하게 말한 자성이 걸음을 옮겨 바닥에 나뒹구는 수건을 집어 싱크대에서 물을 적셔 현관에 그대로 말라붙은 핏자국을 덮었다.
“작은 형님.”
“......”
핏자국이 물에 불어나는 동안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제자리였던 곳으로 올려 두었다. 거동이 불편한 몸을 불안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성의 숨이 거칠게 변하는 것을 본 재헌이 안절부절하며 자성을 말리려 했다.
“병원으로 돌아가시는 게...”
재헌의 등 뒤로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정청이 구둣발로 집안으로 들어서 자성의 팔을 움켜쥐었다.
“씨발! 차라리 욕을 퍼붓던가, 주먹을 휘두르 던가 혀라. 죽어가는 얼굴 하지 말고!”
자성을 한 대 칠 것처럼 정청의 주먹이 꽉 움켜쥐어 있었고 재헌은 한 바탕 정청이 난리를 피울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에 눈을 굴리며 119를 눌러야 하나 싶었다.
“....놔요. 집 치워야 하니까.”
“차라리 나한테 욕을 혀라.”
“왜요. 나한테 잘 못 한 거 있소?”
“씨빠.”
“없으면 일이나 봐요.”
“브라더.”
"뭐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정청의 빈 주먹이 힘 없이 가볍게 풀렸고 자성의 몸을 자신과 마주보게 돌렸다.
“느 왜 그라냐.”
“..주경이... 어떻게 했어요.”
“내가 말했잖냐. 그 씨발년 외국에 갔으야.”
“그럼, 현관에 핏물을 뭡니까.”
“씨벌... 아 떨어졌다. 느 칼에 찔린 날.”
청의 말에 자성의 몸이 흔들렸고 정청이 다급하게 자성을 붙잡았다.
“주경이는 괜찮았습니까.”
“씨발. 느 생각 혀서, 그 씨발년이 몸 추스르고 나서 비행기 태워 보냈다 씨부럴놈아. 느 진짜 안 되겄다. 병원에 가자잉.”
“형님.”
정청이 자성은 자신을 위해서 주경을 배려해 준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꼭 자신에게서 주경을 때어내었어야 했냐고 묻고 싶었다. 그냥, 조용히 덮고 주경과 함께 살게 해주면 안 되는 거였냐고. 따지고 싶었다.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자신의 삶에 딱 하나. 평범하다고 여겼던 ‘가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없이 사라져 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느 여기서 있으면 쓰러져서 뒈져도 아무도 몰라야! 호로새끼야!! 느 걱정하는 형님 말 좀 존나 맛나게 쳐먹지 말고 좀 쳐들어라! 씨부럴놈아!!”
정청이 손으로 자성의 팔과 허리를 잡고 억지로 끌어당겼고 자성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허리를 정청의 손을 털어내며 버텼다.
“놔요.”
한참의 실랑이 끝에 둘 중 아무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하게 대립한 채 서 있었다. 청이 다시 손을 뻗어 자성의 팔을 붙잡았고 자성은 사납게 청의 팔을 쳐내었다.
무의미하게 시간만 깍아 먹는 짓에 질린 정청이 결심한 듯 손을 거칠게 뻗어 자성을 억지로 붙잡았다.
“놓으라고!!!”
“개새... ”
악을 지르는 자성의 행동에 화를 끓어 올려 소리를 지르려했다. 허리를 감은 손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면 말이다. 청이 허리를 감은 손을 풀어 손바닥을 뒤집어 보았다.
자신의 손바닥을 적시던 것은 피였다.
둘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역시나 상처가 터져버린 모양이었다.
청은 머리 끝가지 끓어오르던 피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을 느끼며 얼굴을 구겼다.
“씨발!!! 느 여서 뒈질래!!!”
버럭 소리를 지른 정청의 목소리에 자성도 언성을 높였다.
“내가 디지든 말든 무슨 상관이오!”
“이 호로새끼!!”
정청은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자성의 몸을 거칠게 품으로 끌어안았다.
상처가 더 벌어질까봐 손끝에 힘주어 잡지도 못하고 발버둥 치는 자성의 허리를 팔로 크게 감싸 품으로 꽉 끌어 안았다.
“씨부럴, 제발 말 좀 들어야.”
정청이 애원하듯 말하자 자성의 움직임이 더 커졌다. 정청은 입을 가만히 다물고 바위처럼 아무런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곧 어깨가 무거워 지며 자성의 움직임이 멈추자 정청이 고개를 돌려 자성을 돌아보았다.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자성은 제 풀에 지친 짐승처럼 색-색-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숨을 뱉어내고 있었다.
“지랄 다 떨었냐,”
“나..는... 형님이.. 싫소.”
“나도 느 싫어야. 말도 지지리 안 듣는 씨발새끼.”
“나느..ㄴ..."
자성의 말이 어그러지며 청의 어깨가 미지근하게 젖어갔다. 청은 달래 듯 허리에 감은 손을 들어 자성의 등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쓸어주었다.
“씨바, 알았은께, 이제 돌아가자잉.”
등을 다독이는 따뜻한 손처럼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지만 자성은 아무런 행동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