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은 미끄러운 유리 위를 손끝에 힘을 주어 끌어내렸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매끄러운 유리와 하얗게 질린 손끝이 부벼지며 소리를 내었다.
“...아가.”
정청의 애끓는 목소리에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느 왜 이라고 좁은 곳에 처박혀 있냐.”
유리 너머에 좁은 공간에는 라이터와 담배 한 갑. 그리고 이자성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유골단지만이 존재했다. 그 흔한 사진 한 장 놓여있지 않은 그 좁은 공간이 너무나 춥게만 부였다.
정청은 하얀 단지에 새겨진 이름을 더 이상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여기서 나가면 때리던 말던, 마음대로 해요. 우선,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형님.’
“아가...”
정청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우리 브라더.”
‘아, 알았소. 형님이나 조심해요.’
“...이자성이.”
자성의 이름을 겨우 뱉어낸 정청은 주먹을 쥐어 유리를 내리쳤다.
쿵!!!
공기를 흔든 소리는 침묵에게 삼켜져 사위가 다시 고요해졌다.
‘말은.’
“느가... 왜!!!”
쿵!
다시 한 번 살이 두터운 주먹이 유리를 내리치는 둔한 소리가 울렸고 정청의 어깨가 들썩였다.
“씨발!!!”
쿵! 쿵쿵!
눈물에 젖은 정청의 목소리와 주먹질에 의한 둔한 소리가 조요한 납골당을 흔들었다.
“미안하다! 미안혀. 개호로새끼야. 느를... 끌어들여... 존나... 미안하다.”
닿지 못할 사과의 말이 정청의 입술 사이에서 쉼 없이 흘러나왔다.
“내가, 느를 붙잡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때 너를 내치기만 혔어도..!”
어쩌면, 너는 경찰 이자성으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정청은 손가락이 하앟게 질리도록 세게 쥐어진 주먹이 힘없이 유리 위를 미끄러졌다. 팔이 미끌어지자 몸이 중심을 잃고 납골함으로 몸이 기울었다. 정청은 싸늘한 유리 위로 이마를 댄 채 자성의 이름을 끝없이 불렀다.
“자성아. 이자성이. 이자성. 이자성. 이자성...!”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청은 이자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자신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만히 자신의 체온에 미지근하게 데워진 유리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자성아.”
‘아, 초상났소? 그만 울어요.’
“미안허다.”
몸을 추스린 정청은 새빨갛게 변한 눈동자로 자성의 이름을 똑바로 바라보고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씨바, 브라더. 내가 여기에 다시 올 때, 느 이라고 만든 새끼들 목을 가져올 텐께. 억울혀도 쬠만 참어라잉. 이 형님 보고 자퍼도 울지 말고잉.”
‘허, 참. 누가? 아, 빨리 가요. 나 바빠.’
“하여간, 우리 브라더는 뒤져도 존나 까칠해잉. 그려, 이만 갈란께.”
‘오지마요.’
“다음에 올 때는 선물 사갖고 올란께.”
‘그런거 필요 없소. 오지마.’
“씨바. 느만 먼저 갔다고 삐지지 말어야. 금방, 따라 갈란께.”
‘오바는. 늦었소. 빨리 가요.’
“그라고 등 안 떠밀어도 간다잉.”
정청은 유리를 너머로 자성의 이름을 다정하게 쓸어내리고는 몸을 돌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까만 선글라스로 눈물로 충혈 된 눈을 가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재촉해 서늘한 납골당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햇살이 정청의 몸을 감쌌다.
“형님!”
“씨발. 회사로 돌아가자잉. 좆같은 늙은 여우들헌티 니들 오야가 사지 멀쩡하게 살아 있다고 알려 줘야제.”
“예!!!”
납골당이 흔들릴 정도로 우렁찬 대답이 흘러나왔고 정청이 차에 올라탔다. 정청의 뒤를 이어 조직원들이 모두 차에 나누어 올라타자 선두차량을 따라 정청이 탄 차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움직이는 차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던 정청이 손을 들어 옆 좌석을 짚었지만, 매끈한 가죽 시트의 감촉만이 손바닥에 전해져왔다.
고개를 돌려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뭐요?’
선글라스 너머에 있는 자성의 환영이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때고 자신을 바라보았다.
정청은 환영을 무시하며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청은 주머니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어 통화목록을 살폈다. 통화목록에는 ‘브라더’라는 이름이 가득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재범파가 자신들을 덮칠 때 자신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액정을 엄지 손 끝으로 쓸어내고는 머뭇거리다가 통화 버튼을 힘주어 눌렀다. 귀에 닿은 휴대전화 너머에서는 통화 연결음이 길게 이어졌다. 무미건조한 통화 연결음이 길어질수록 정청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받을 듯 끊어졌다가 연결되는 통화연결음에 입술이 때어졌다가 다물어지기를 서너번.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익숙한 안내 목소리가 끝을 맺기도 전에 정청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때어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전화번호부에서 삭제를 눌렀다.
‘연락처가 삭제됩니다.’ 라는 글귀에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청은 최소를 누르고 휴대전화의 액정을 끈 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브라더...”
짧은 단어 하나가 정청의 입술에서 흘러나와 조용한 차 안을 울리고, 다시 귀로 흘러들어와 심장을 무겁게 누르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