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나 브로맨스 소재가 불편하신 분들은 창을 꺼주세요.
정청이 복귀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중국 삼합회와의 관계를 복귀시킨 일이었다.
국내에서 세력을 키울 수 없다면 눈을 돌려서 서서히 키우는게 우선이었다. 그게 중구의 눈을 피하면서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관리 할 수 없기에 최후에 사용하는 보험같은 것이라고 생각 해야 했다.
정청에게 회사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영감이 그렇게 갔더라도, 자신의 조직원들이 배부르게 먹고, 눈치 보지 않을 정도의 자리를 가지고 있으면 되었다. 물론, 중구를 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모든 것이 달라졌다.
허새가 가득한 사춘기를 겪는 중구의 행동에 제 피와 같은 자성과 살덩이 같은 수하들이 목숨을 잃었다.
복수를 위해서, 명분을 위해서, 이 회사는 무너져야만 했다.
그리고, 중구도.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야 막아!”
정청은 자신을 막는 조직원들을 밀쳐내고 회장실의 문을 열었다.
찰칵.
문이 열리고 골프채를 든 중구의 눈이 정청과 마주쳤다.
“나가 겁나 무서운 갑네? 아주 애새끼들이 병신새끼하나 못 잡아서 똥구녕에 불붙은 것마냥 날뛰든디.”
정청의 뒤를 따라 회장실로 들어온 조직원이 정청을 잡으려 했지만 정청이 한 발 더 빠르게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정청이 문으로 들어오는 조직원들을 향해 주먹을 마저 날리려던 찰나에 짜증이 가득한 중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퍽!
정청은 마저 주먹을 휘두르고 몸을 바로 했다. 그런 의도적인 행동에 중구의 표정이 구겨졌다.
“씨발.. 환영인사 겁나 거창해부네.”
“짱깨새끼가 자리보전이나 하지, 뭐하러 여기까지 행차 하셨을까? 두 다리가 멀쩡한거 보니, 아직 덜 맞았나 보네.”
“잉. 덕분에 석달이나 침대에 디비져 푹 쉬었제. 느 낮짝 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쓰것냐.”
정청의 입술에서는 중구를 향한 반말이 거침없이 뱉어져나오자 중구는 곧게 뻗은 눈썹을 꺽으며 정청을 바라보았다.
“짱깨새끼가 깨어난지 얼마 안되서 그런가, 상황파악을 덜 했나보네. 꺼져. 왜? 엉덩이가 무거워서 안 떨어져? 우리 애들보고 배웅해 달라고 할까?”
정청은 손에 들고 온 쇼핑백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회장 됐다든마, 씨발. 얼굴에서 개기름이 좔좔 흘러부네. 중구 인생. 완전 계타부럿고마! 느가 좋아허는 스테이끄로 삼시세끼 챙겨 묵었나보네잉.”
“씨발, 너희 새끼들 숨붙어있는 것도 다행인 줄 알아. 짱깨새끼. 그 냄새나는 주둥이 잘못 놀리면 네 새끼들 목이 날아간다는 거 이젠 깨달아야 되지 않겠냐?”
정청의 얼굴 앞으로 중구가 쥐고 있던 골프채의 둥근 머리가 위협적이게 들이밀어졌다.
“그려, 높은 곳에서 잘 지켜보고 있어라.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제잉. 이라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믄 뼈다귀 하나도 못 추리긋네. 그럼, 잘 부탁헌다잉. 요긋은 잘 봐주십사 허는 선물인디 거절 하지 말고.”
“필요 없으니까. 가지고 꺼져. 짱깨새끼.”
“잉. 씨발. 존나게 기다렸다고?”
정청은 반 정도 탄 담배 끝을 원목 테이블에 비벼 끄고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일이 바뻐서 가야것다.우리 브라더, 제삿밥이나 먹게 혀줘야제.”
정청이 사무실에서 나가자 중구는 손에 쥐고 있던 골프채를 두 손을 쥐고 탁자 위에 올려진 쇼핑백을 풀스윙으로 쳐냈다.
퍽!
둔한 소리를 내고 찌그러진 쇼핑백이 벽으로 날아가 산산조각이 나서 진한 알콜냄새를 남기고 구석에 처박혔다.
“씨발! 당장 갖다 버려!!!”
분노하는 중구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정청은 "씨발새끼"라고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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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아, 네 자료는 해킹 때 삭제됐다는 거, 기억하고 있냐?”
강과장의 말에 자성은 불안감을 느끼며 강과장의 입에서 시선을 때지 못했다.
손이 축축하게 젖었다.
“예. 뭐.”
“네 경찰신분을 복귀시킬 수도 있지만, 넌 이미 죽은 사람이야. 정청이 네 생사를 확인하려고 동사무소에 간다면 넌 죽었다고 떠야 된다. 공식적으로 말이야.”
괜히 강과장이 말을 주절거리는 것에 자성이 갖은 불안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경찰신분은 무리고, 다른 쪽에서 정보원으로 활동하게 될거다. 하지만 넌 죽은 사람이야. 위조신분은 주워지겠지만, 그게 널 지켜주지는 못 할 거다. 몸 조심해라.”
자성이 강과장이 내민 여권을 받아 펼치자 자신의 사진이 박힌 주민등록증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
“너 중국어는 할 줄 아냐?”
조금은 할 줄 안다고 했더니 자신이 배정될 곳이 중국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자성은 비행기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색을 보며 길게 숨을 뱉었다.
‘잊자.’
길지 않은 비행시간 동안 머리를 비우고 공항에 내려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종이를 흔드는 남자가 있었다.
“오는데 고생했어요. 강과장님한테 이야기 들었습니다. 잘 부탁해요.”
“예.”
남자와 함께 공항에서 걸어 나와 주차장의 차 앞에 선 자성이 습관적으로 뒷좌석 문을 잡았고 그것을 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조수석에 타지 그래요?”
“아... 예.”
“우리들이 당신이 여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예.”
자성은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창밖의 낯선 풍경을 바라보았다.
“별명은 정했어요?”
“예?”
“별명이요. 참고로 저는 조용필이죠. 제가 조용필씨 노래를 진짜 좋아하거든요.우리 용필이 형님이 말이죠! 크흐! 아이돌 못지 않은 노래 들어보셨어요?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끊이지 않은 용필의 말에 자성은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보내며 입술을 다문채 창문 밖의 풍경에 집중했다.
낯선 건물들과 사람들. 그리고, 귀로 들리는 한국말.
자성은 자신이 이 곳에서도 이방인이 되어 살아가게 될거라는 것을 깨닫는데 늦지 않았다.
이직준비를 했었지만... 장렬하게 실패했습니다.;ㅅ;
정청과 자성이 서로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소설의 구조가 이중구조?가 될 것 같네요.
병원에서 자성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준 남자의 모델은 사실 감시자들의 '제임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