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세계(2013)의 가공물입니다.
동성애와 브로맨스에 거부감을 갖고 계신분들은 창을 꺼주세요.
정청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자성의 사진이 있는 단상 앞에 두 번 절을 했다.
사찰 곳곳에 베어있는 짙은 향냄새가 정청의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후우-”
답답한 속을 풀어보려고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가 길게 숨을 뱉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씨발. 우리 브라더. 제삿밥 늦었다고 너무 타박 말어라. 나도 쬠 바뻤은께.”
정청은 미끄러운 유리 위를 손끝에 힘을 주어 끌어내렸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매끄러운 유리와 하얗게 질린 손끝이 부벼지며 ‘뽀득-’하고 소리를 내었다.
“...아가.”
정청의 애끓는 목소리에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정청은 "하여간 디져서까지 존나 까칠혀." 하며 작게 중얼 거리며 손을 뻗어 수저를 들어 머슴밥처럼 그릇보다 높게 쌓인 밥에 수저를 꽂았다.
“안 그려도 거죽밖에 읍는디, 배터지게 묵고. 먼 길 잃어버리지 말고 가라잉.”
‘으미? 느 벨트가 더 줄었으야? 워마, 한 팔에 착 감겨불고만! 씨부럴, 느 뭐 묵기는 하냐?’
‘오바는...’
싱거운 자신의 말에 말을 흐리며 말갛게 웃던 그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 눈이, 그 입술이 어떻게 웃었는지 희미하기만 했다.
정청은 자성의 사진을 한 번 더 어루만졌다. 손끝에 느껴지는 차가운 유리의 촉감만이 손바닥을 달래주었다.
‘아, 그만 좀 봐요. 내 얼굴 닳겠네.’
“아가...”
정청은 차갑게 식은 자신의 손을 움직여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우리 브라더.”
‘그렇게 뚫어지게 볼거면 돈 주고 보던가.’
그 소박하게 웃던 웃음소리가 정청의 귓가를 맴돌았다.
“느가... 왜...”
말로 표현하지 못할 여러 가지가 섞인 감정들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 느껴졌다.
“왜... 느가 여 있냐...”
자성의 사진을 삼킬 듯이 부푼 새하얀 국화가 이렇게 흉측하게 보일 때가 없었다.
정청은 빈주먹을 꽉 쥔 채 울부짓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혀... 느를... 끌어들여서. 존나... 미안허다.”
닿지 못할 사과의 말이 정청의 입술 사이에서 쉼 없이 흘러나왔다.
“내가, 느를 붙잡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때 너를 내치기만 혔어도.. 이르지는 않었것제잉.”
어쩌면, 자성은 작은 경찰서에서 경찰로 근무하며 평범하게 퇴근시간과 월급날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몰랐다.
“자성아.”
‘아, 초상났소? 그만 울어요.’
“미안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린 정청은 미련이 남은 듯 고개를 돌려 새빨갛게 변한 눈동자로 자성의 사진을 바라보고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씨바, 브라더. 내가 여기에 다시 올 때, 느 이라고 만든 새끼들 목을 가져올 텐께. 억울혀도 쬠만 참어라잉. 이 형님 보고 자퍼도 울지 말고잉.”
‘허, 참. 누가? 아, 빨리 가요. 나 바빠.’
“하여간, 우리 브라더는 뒤져도 존나 까칠해잉. 그려, 이만 갈란께.”
‘오지마요.’
“다음에 올 때는 선물 사갖고 올란께.”
‘그런거 필요 없소. 오지마.’
“씨바. 느만 먼저 갔다고 삐지지 말어야. 금방, 따라 갈란께.”
‘오바는. 아, 누가 오래? 늦었소. 빨리 가요.’
“그라고 등 안 떠밀어도 간다잉.”
자성의 사진에서 눈을 땐 정청은 자켓에서 까만 선글라스를 꺼내어 눈물로 충혈 된 눈을 가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재촉해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햇살이 정청의 몸을 감쌌다.
“형님!”
“씨발. 싸게 회사로 돌아가자잉. 좆같이 늙은 여우들헌티 니들 오야가 아직 안 디졌다고 알려 줘야제.”
“예!!!”
조용한 공기를 흔드는 우렁찬 대답이 흘러나왔고 정청이 계단을 내려와 차에 올라탔다. 정청의 뒤를 이어 조직원들이 모두 차에 나누어 올라타자 선두차량을 따라 정청이 탄 차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움직이는 차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던 정청이 손을 들어 옆 좌석을 짚었지만, 매끈한 가죽 시트의 감촉만이 손바닥에 전해져왔다.
고개를 돌려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뭐요?’
선글라스 너머에 있는 자성의 환영이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때고 자신을 바라보았다.
정청은 환영을 무시하며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청은 주머니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어 통화목록을 살폈다. 통화목록에는 ‘브라더’라는 이름이 가득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재범파가 자신들을 덮칠 때 자신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액정을 엄지 손 끝으로 쓸어내고는 머뭇거리다가 통화 버튼을 힘주어 눌렀다. 귀에 닿은 휴대전화 너머에서는 통화 연결음이 길게 이어졌다. 무미건조한 통화 연결음이 길어질수록 정청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받을 듯 끊어졌다가 연결되는 통화연결음에 입술이 때어졌다가 다물어지기를 서너번.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익숙한 안내 목소리가 끝을 맺기도 전에 정청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때어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전화번호부에서 삭제를 눌렀다.
‘연락처가 삭제됩니다.’ 라는 알림에 ‘확인’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청은 결국 최소를 누르고 휴대전화의 액정을 끈 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아가... 이상허제? 방금 느 얼굴 빵구나게 봤는디... 겁나 보고잡어야.”
짧은 단어 하나가 정청의 입술에서 흘러나와 조용한 차 안을 울리고, 다시 귀로 흘러들어와 심장을 무겁게 누르는 것을 느꼈다.
정청이라면 슬픔을 어떻게 이길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40대 중반 쯤 된 정청은. 10대의 철부지들처럼 슬퍼 죽어버리겠다고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삭히고 슬퍼하겠구나.
특히, 자기 부하들도 있는데. 울더라도 혼자 있을때. 정말 정말 견딜 수 없을 때나 술의 힘을 빌려서 눈물 흘리겠다. 라고 생각했더니, 전보다는 많이 유(?)해진 것 같아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