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제 수하들 대신 정청계에서 넘어온 아이들이 조직의 반을 이루었지만, 정청이 신경 쓴 모양인지, 얼굴들이 썩 나쁘지 않았다.
‘짱깨가 보는 눈이 있나보군.’
자신에게 보내온 수하들을 훑으며, 중구는 나름 청의 사람 보는 눈에 대한 칭찬을 했었다.
물론, 아주 잠시만.
지잉. 징. 지이잉. 징.
미친 듯이 울리는 휴대전화 액정을 확인한 중구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전화를 무음으로 해두고 다시 음식을 썰던 중구는 부드러운 고기를 작게 썰어 입에 넣고 씹었다. 고기에서 흘러나오는 육즙이 입 안에 퍼지자 중구의 표정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저... 형님.”
“뭐야.”
정청계의 사람이었던 수하 하나가 휴대전화를 내밀며 받기를 청했다. 중구는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짱개새끼면 나 식사 끝나고 연락하라고 전해.”
[씨불놈아!!! 빨랑 못 움직이냐]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정청의 목소리로 아침을 시작한 중구는 미친 듯이 짜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뭐야, 개새끼야.”
[아따, 씨벌, 받자마자 욕이냐.]
“아침부터 네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짱개새끼.”
[오널 병원 가야 허는 날 이여야. 꼭 다녀와라잉.]
“내가 너 인줄 아냐.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만 전화해 짱깨새끼야.”
[씨발놈....]
중구는 청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주인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짱개새끼한테 온 전화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 새끼야.”
“죄,죄송합니다.”
다른 수하의 휴대전화가 중구의 휴대전화처럼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하자 중구의 매서운 시선이 그에게 꽂혔고, 그는 중구에게 머리를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황급하게 종료버튼을 눌러 휴대전화를 잠재웠다. 도미노처럼 다른 수하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고요한 레스토랑에 진동소리가 중구의 귀를 거칠게 긁었다.
한 참 뒤 정청계 아이들의 휴대전화를 한 바퀴 돈 모양인지 다시 테이블 위에 있던 중구의 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하자 중구는 제 핸드폰을 벽에 던져버렸다.
-
초인종 소리에 옷을 갖춰 입던 자성이 카메라를 확인하고 문 너머에 서 있는 중구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무슨 일로 자신의 집에 찾아왔나 싶어 생각 해 보았지만 딱히 생각나는 답이 없었다. 그 사이에 중구가 신경질 적으로 벨을 눌러대자 생각을 끊고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중구형이... 여긴 무슨 일이오?”
“비켜.”
짜증이 가득한 중구가 자성의 어깨를 밀치며 집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빨리, 나갈 준비 해.”
“이 아침부터 무슨 일이오.”
중구는 미친 듯이 울리는 전화를 보며 무음으로 만들어버리고는 자성을 바라보았다.
“병원, 가야한다며. 빌어먹을 짱개새끼가 아침 먹을 때부터 전화질이라서 폭발하기 직전이니까. 빨리 움직여라.”
중구는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휴대전화를 반사적으로 무음으로 만들며 휴대전화를 무시했다.
“알아서 갈테니 일 봐요. 중구형.”
“씨발. 말 좀 처들어라.”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온 몸으로 내뿜는 중구의 모습에 자성은 입을 다물고 마저 옷을 챙겨 입었다. 중구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진동하는 것을 멈춘 것을 알아차리고 승리의 미소를 띄웠다.
자켓을 입고 방에서 나오던 자성이 휴대전화를 받았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오?”
[야, 거가 중구놈 있냐?]
“있소.”
[햐~, 고 새끼, 더럽게 전화도 안 받아야.]
“중구형은 무슨 일로. 찾아.”
[느 병원 대꼬가라고. 말 좀 할라고 했더만 싸가지 없게 끊어버리데.]
“혼자 갈 수 있소, 바쁜 사람을 왜 괴롭혀.”
[씨발, 싸늘한 시키.]
중구는 전화를 받느라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자성을 보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자성의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씨발, 바쁘니까 끊어. 짱깨새끼야.”
자성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중구가 자성의 휴대전화를 끊어 버리고 자성을 돌아보았다.
“내 전화에 짱개새끼 전화번호 뜨게 하지 말고, 빨리 움직여.”
자성은 중구에게 이끌려 차에 태워졌고 엉겁결에 병원 앞에 내려졌다.
“끝나면 전화해.”
“진석이 부르면 되오.”
“내 핸드폰에 짱개새끼 번호 뜨게 만들지 말고. 말 들어.”
자성이 자꾸 자신의 말을 쳐내자 중구는 인상을 구기며 말을 뱉어내고, 짙게 코팅이 된 차의 창문을 올렸다. 자성은 차가 멀어지자 숨을 토해내며 병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왜 중구가 널 여기에 대려다 주냐.”
“사정이 있었습니다.”
“장수기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조심해라. 다음 주까지 골드문 조직도 다시 작성하고, 장수기에 관한 자료 준비해라. 조금만 더 견뎌라.”
“조금만 더 견디라고 한 게, 벌써 8년입니다. 압니까? 석회장도 죽고, 원하는 대로 장수기가 회장 자리에 올랐잖습니까!”
“정청과 이중구가 그대로 있잖냐. 장수기가 언제 내쳐질지 모른다.”
형철의 말에 자성이 형철의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씨발!!! 이거 끝은 나는 겁니까?”
“너. 깡패새끼 다 됐구나. 깡패새끼들이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던?”
형철이 자성의 손을 풀어내고 구겨진 옷을 다듬었다.
“주경이, 보고 싶지 않냐?”
“찾았습니까?”
이자성의 무른 성격이 제 목을 조르는 약점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다. 덕분에 형철이 자성을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것도 있었기에 그 점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잘 살고 있더라.”
“.......”
“장수가가 네 정체를 알고 있다. 경찰이 아니라 프락치라고만 알고 있지만. 그리고, 내가 말 했잖냐. 너 경찰 신분 복구시켜 줄 수 있다고. 이제 진짜 깡패새끼가 되려고 맘먹은 거냐?”
형철의 말에 자성의 시선이 흔들렸다. 형철은 그런 자성의 모습에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출장소는 금방 알아보마. 나중에 또 이야기 하자.”
“형님. 아니 정청이. 제 집에 들어왔습니다.”
“뭐? 무슨 일 있었냐.”
형철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번 상해 출국 전에 갑자기 움직인 거라서, 저도 이유는 모릅니다.”
“네가 무의식적으로 뭘 흘렸을 수도 있다. 곁에 두고 널 마킹하려는 걸 수도 있으니, 한 동안은 조심해라. 유심칩 처분하고. 나중에 시간되면 공중전화로 연락해라.”
“형님, 아니 정청은 제 정체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 서류도 해킹 당했다고 했잖습니까.”
“그래. 하지만 넌 살아 있잖냐. 정청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청은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건 너를 쉽게 쳐내지 못 할거다. 덕분에 한 수 벌었지.”
자성은 형철의 말에 자신이 정말 무기질의 장기 말이 되어 커다란 판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게 꿈이고, 자신은 정말 장기판의 말 일지도 몰랐다.
“할 말이 그것 뿐 입니까?”
“혹시, 허튼 생각 하지 말고, 전처럼 넌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
“.....가겠습니다.”
형철의 말에 자성은 대답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밖으로 옥상을 내려왔다. 형철은 멀어지는 자성의 등을 바라보며 전과 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